美 회계부정 차단 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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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월드컴에 이어 제록스도 추가 분식 회계를 실토하며 미국 기업들의 회계부정 스캔들이 갈수록 번지고 있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의회에 기업투명성 제고 방안 10개항을 조기 통과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28일 "정부는 주식회사 미국에 대해 높은 기준을 갖고 있다"며 "이 기준이 확인되도록 엄격히 법을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는 29일 정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서도 비리 경영진에 대한 엄단 방침을 밝히는 한편 다음달 9일에는 월가를 직접 방문해 연설할 것이라고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이 발표했다.

부시의 이같은 발언은 국제 자본주의의 모델로 간주됐던 미국 기업들이 잇따른 회계부정으로 흔들리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은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부시가 엔론 파장을 잠재우기 위해 지난 3월 제안한 기업회계 개선 10개항의 국회 통과도 급류를 탈 전망이다.

10개항에는 ▶재무재표를 허위 작성한 경영진의 보너스 등 모든 수당 압류 및 다른 상장사 취업 제한▶임직원의 자사주 거래 때 이틀 이내 공시▶증권거래위원회(SEC)에 회계법인에 대한 조사·처벌 전담 조직 신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제록스는 이날 최근 5년간 총 19억달러(매출의 2%) 규모의 매출을 부풀렸다고 시인했다. 제록스는 임대한 복사기를 팔았다고 계산하는 수법으로 매출을 과대계상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측은 이에 따라 지난 5년간 매출을 9백10억달러로 축소하고, 이 기간 중 세전 이익 규모도 당초보다 14억달러를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제록스는 이미 SEC로부터 지난해 분식회계 여부를 조사받았으며, 지난 4월 미 기업 사상 최대인 1천만달러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제록스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앤 멜캐히는 "오늘로서 제록스의 시련의 계절은 끝났다"며 "엄정한 회계처리 관행을 정착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냉혹해 이날 제록스의 주식은 장중 한때 거래가 중단됐으며,주가는 20% 이상 폭락하다 결국 12.9% 하락한 채 마감했다.

한편 SEC의 하비 피트 위원장은 오는 8월 14일까지 9백45개 미국 기업 CEO로부터 회계보고서가 정확하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을 것이라고 이날 발표했다. 여기에는 마이크로소프트·제너럴 일렉트릭 등 미국 유명 기업 대부분이 포함돼 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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