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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드리운 '문화 文盲'현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26세기 무렵 미국 유타주 사막. 가톨릭 수사(修士) 한 명이 그곳에서 지하 은닉처를 발견한다. 뜻밖에 책들이 무더기로 숨겨진 공간이었다. 앞뒤 상황은 이렇다. 20세기 후반 우려했던 핵 전쟁이 터졌다. 황폐해진 세상에 살아남은 이들은 '얼간이당'을 만들어 엘리트층을 박해하고 책은 태워버리는 광기로 치달았다. 암흑의 시대 한 수도회가 지하 공동체를 설립한다. 핵 폭발 이전 인류의 정신 유산을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서적 밀수꾼' ''암기자'로 나뉘어 비밀활동을 한다. 죽음을 무릎쓰고 책을 수집해 보관하거나 아니면 통째로 외워버리는 눈물겨운 노력이 이때 전개된다.

우리 시대의 비속함과 문화몰락의 징후에 대한 풍자로 쓰여진 미국의 SF소설이 긴 여운을 준다. 지난 주 소개했던 책 『미국 문화의 몰락』(모리스 버만 지음,황금가지)에 내비치는 얘기 한토막이다. 이 시대 문화몰락의 징후의 핵심 원인으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의 심각한 저하현상을 꼽고 있는 그 책은 윌리엄 밀러의 소설『라이모비츠에 바치는 찬가(A Canticle for Leimowitz)』를 통해 이 시대를 통렬하게 야유한다. "글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비판적 사고야말로 유일하게 민주적이다"(76쪽)는 버만의 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 대목을 읽는 나의 경우 책 문화 옹호를 맡은 북섹션들의 존재 이유란 게 거의 문명사적 종류의 것인가 싶어 겁이 덜컥 나기도 했지만, 이번 주 소개하는 유종호 교수의 『다시 읽는 한국 시인』<29면 리뷰> 역시 우리 사회에 미만한 문화 문맹(文盲)현상을 속 깊게 우려한다. 때문에 그 목소리는 버만의 발언과 서로 공명(共鳴)현상을 일으켜 다가온다. 그렇다. 바로 그 대목이다. 문화 지상주의를 향한 유교수의 초강수 표현 하나가 눈을 확 잡아 끈다. 우리 사회가 오래 음미해볼 만한 문제의 대목은 "문학의 향수(享受)능력은 시민적 자질이다"는 발언이다. 문학 이해를 문화적 자질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시민적 자질이라고 못박은 이유를 음미해보자.

저자의 말대로 우리 사회는 "사회문화적 건망증, 몰주체적 대중영합, 주견없는 유행추수 현상"(8쪽)에 대한 균형잡힌 견제가 드물다. 사정이 그러하니 모른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몰염치와 하향평준화 추세가 오래 진행돼 왔다. 쓸쓸하면서도(문화적 풍경이), 분별없이 소란해진(사회적 소음 때문에) 이 시대에 문학동네의 어른 한 사람의 목소리는 각별한 계고(戒告)의 울림으로 연결된다. 그런 느낌은 유교수의 문학 행위가 갖는 독자적인 무게 때문이기도 하다.

이념 진형으로 나뉘어 웅웅거리는 쉰 목소리들의 와중에 견지해온 '인문주의적 교양정신과 접맥된 문학'행위는 위엄에 찬 것이다. 또 그것이 '상처 하나 없는 순수'와 또 다른 방식을 통해 얻어진 문학적 덕목임을 우리는 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이 더 이상 세상의 관심이 아닌 시대에 등장한 『다시 읽는 한국 시인』은 아마도 '신수도사적 인물(New Monastic Individual)'인지도 모른다. 그 어휘를 혹시 기억하시는가? 『미국 문화의 몰락』의 저자가 문화 몰락을 막을 수 있는 해결책으로 제시한 2%에 해당하는 소수 엘리트 문화 지식인의 적극적 역할 모델을 말한다.

<출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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