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끝> 잔치 : 이젠 일상의 자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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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붉은 악마의 발신 코드 가운데 가장 혼란을 일으켰던 것은 '오 필승 코레아'의 추임새다.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오 피스 코리아라고 들었고 어려운 한자말을 모르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오 미스 코리아로 잘못 알았다. 필승이라는 말 자체가 승리 지상주의의 절대언어로 이제는 조금 낡아버린 코드이기도 하다. 물론 축제의 코드에서도 그 즐거움을 증폭시키기 위해 승부의 게임 코드를 첨가한다. 민속 축제에 따라다니게 마련인 씨름과 그네타기·고싸움놀이 같은 예를 들지 않아도 설날이면 윷놀이를 한 경험을 되살려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축제의 공간에서 전개되는 경쟁과 승부는 결과보다 그 과정에 중심을 둔다. 이러한 코드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일본에 진 러시아가 폭동을 일으켜 일본 식당을 습격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혹은 한국에 진 이탈리아가 심판 부정의 음모설을 퍼뜨리고 역전골을 넣은 안정환을 매도하는 것 같은 비상식적 상황이 발생한다.

게임=축제는 일상과 일상의 생활 사이에서 타오르는 불꽃이다. 타다가 꺼질 수밖에 없는 불꽃, 싸늘하게 식을 수밖에 없는 재다. 영원한 잔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잔치 마당에서 탈춤을 추고 나면 으레 탈을 벗어 불살랐다. 벤야민의 말이 생각난다. 역사의 해석자는 장작과 재만 보지만 역사의 창조자는 장작과 재 사이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을 본다. 승부의 원인이 되는 장작과 그 결과물인 재에는 광망의 빛이 없다. 오로지 그 사이에 땀을 쥐게 하는 삶의 희열과 승부의 긴장인 게임의 불꽃이 타고 있다.

붉은 악마는 승리의 문턱에서 분패한 뒤에도 계속 즐겁게 응원했으며 승리한 독일 팀에도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염려했던 것처럼 분풀이의 난동도 없었고 못먹는 감을 찔러보는 심술도 없었다. 2천5백만장이나 판매된 붉은 악마의 티셔츠 하나 하나가 빨갛게 불타 재가 되었다. 축제는 불꽃이라는 것을 유감없이 세계를 향해 발신한 것이다.

"잔치는 끝났드라./마지막 앉아서 국밥을 마시고/빠알간 불 사루고 재를 남기고."

미당의 시 '행진곡'의 그 잔치처럼 빨갛게 불 사르고 재를 남기며 우리의 축제는 끝난다. 이제 붉은 악마의 그 티셔츠의 불꽃들도 그렇게 사위어 갈 것이다.

붉은 악마의 향후 진로는 미정이지만 붉은 악마의 한 리더는 (붉은 악마에는 원래 리더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월드컵이 끝나면 발전적 해체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보였다. 순수한 선언이다. 그 열정과 집단의 힘이 정치적인 목적과 상업주의에 이용된다면 대한민국을 하나로 결집시켰던 그 마력은 소멸되고 말 것이다. 붉은 악마의 범주영역은 자연발생적인 집단이다. 인위적인 제도나 위계질서로 만들어진 관료조직이나 종교집단도 아니다. 그렇다고 비합리적인 자연 집단도 아니다.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자연발생적으로 스스로 태어난 조직이면서도 합리적인 질서를 갖고 있는 21세기형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인터넷처럼 자기 조직화로 증식되어 가는 비제도적 조직인 것이다.

직장의 출근시간이나 군대의 대열도 없이 모여와서는 질서있게 응원하고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났다. 그야말로 무질서 속의 질서였다.

축구에서의 헤딩슛을 생각해 보자. 아무리 강슛을 해도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들어오는 공은 쉽게 골 키퍼가 막아낸다. 하지만 공의 방향과 속도를 헤딩으로 살짝 바꿔놓은 축구공은 거미 손의 키퍼도 놓칠 수밖에 없다. 붉은 악마가 발신한 문화코드는 거의 모두가 서구에서 들어온, 아니면 한국의 전통적인 기성 문화코드를 탄력있는 고공 점프의 헤딩에 의해 그 방향을 돌려놓고 속도를 바꿔놓은 공과도 같다. 예상도 하지 못하는 멋진 헤딩슛으로 미래의 골문을 열어놓았다.

"결국은 조금씩 취해 가지고 /우리 모두 다 돌아가는 사람들./모가지여 /모가지여/ 모가지여/ 모가지여."

미당의 시처럼 잔치의 끝은 머리도 가슴도 손과 발의 사지도 아니다. 우리가 한달 동안 그렇게 목 터지게 불렀던 그 함성과 손목이 부러지도록 두드린 응원은 우리 모두가 갈증에 타고 있는 모가지, 생명의 그 모가지였을는지 모른다. 잔치는 끝났다. 빨리 일상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도 따분해 하거나 겁내지 마라. 이미 그것은 지금까지 반복해온 일터가 아니다. 늘 보던 그 가정이 아니다. 습관처럼 어제 보던 그 이웃들의 얼굴이 아니다. 축제를 통해 우리의 눈과 마음이 바뀐 까닭이다.

◇이어령 본사 고문의 홈페이지(www.oyoung.net)에서 더욱 다양한 글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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