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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팀 실수는 안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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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5년 전 6월 우리 경제는 물가안정 속에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무역수지가 2년반 만에 처음 흑자로 돌아섰다. 강경식 당시 부총리는 1997년 7월 2일의 비망록에서 "불안감 없이 경제가 풀려가고 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은 7월 8일, 태국의 바트화 폭락으로 시작된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 국내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정치논리와 맞물려 기아그룹의 부도처리 문제가 몇달간 폭풍의 눈이 될지는 예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97년 금융위기와 다른 점

월드컵 열기 속에 정부가 지난 수요일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발표했다. 올해 성장률은 예상보다 높은 6%대, 물가는 3%대의 안정, 경상수지 흑자도 50억달러 이상으로 전망이 밝다. 안정성장을 목표로 거시정책을 운용해 나가면서 부실기업 처리와 은행민영화 등의 구조조정 현안을 모두 마무리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의 낙관적인 전망을 비웃듯 세계금융시장의 먹구름이 심상치 않다. 엔론사태에서 시작된 미국기업의 신뢰붕괴는 25일 월드컴사의 38억달러 회계장부 조작사건으로 또 다시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이 전세계로 파급되면서 국내증시 역시 급락해 700선에서 턱걸이를 하고 있다.5년 전 이때의 800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미국경제의 금융불안과 경기회복 지연, 달러약세로 인한 원화환율의 강세는 우리 경기회복을 이끌어온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크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도록 우리 경제 전체의 위험관리에 힘써야 할 때다. 금융시장의 참가자들은 위험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시장의 불안정에 따라 정부까지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는 없다. 정책의 일관성이 더 중요하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적인 정책을 내놓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다만 시장의 불안이 과도하게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경제의 투자율은 97년의 34%에서 98년에 금융위기로 21%로 급락한 이후 아직도 27%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해외부문에서 오는 충격을 우리가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내부의 취약한 부분은 제거할 수 있다. 97년에 금융위기를 맞게 된 것은 부족한 외환보유액과 금융기관의 과도한 단기부채 때문이었다. 위기극복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은 늘었고 금융기관의 단기부채는 크게 줄었다. 다시 97년과 같은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기업과 은행의 구조적 취약성은 아직도 장기적인 불안요인으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은행들의 재무건전성이 주요 금융거래국 중에 70위에 그치는 것으로 무디스가 평가했다. 아직 은행들의 재무상태는 허약하다. 97년 기아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았듯이 지금의 하이닉스 반도체가 그럴 우려가 크다. 부실기업의 처리를 늦춰선 안된다.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로 국제적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시점이다. 우리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고 해외 직접투자의 유입을 더욱 촉진해 나가야 한다. 2001년 전체 외국인의 직접투자는 32억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과감하게 외국기업의 경영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장기투자 목적의 외국인 투자의 유입은 증권시장에 투자한 단기 해외자본과 달리 갑작스럽게 우리 시장을 떠나기 힘들기 때문에 외환위기의 발생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을

우리 사회 분위기가 너무 들떠 있다. 8월의 재·보선과 12월의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 과연 경제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제팀은 어려운 게임을 앞두고 있다. 한편으로는 남아 있는 구조적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공격을 강화하면서 앞으로 6개월간 불확실한 국제환경과 정치권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 축구팀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월드컵 4강의 업적을 이뤘듯이 우리 경제팀 역시 5년 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많은 현안을 잘 마무리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다만 경제팀에는 히딩크와 같이 신뢰감을 주는 감독이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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