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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사회 "어리석은 판결" 분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미국 제9순회 항소법원이 26일 국기에 대한 맹세(충성맹세)를 위헌이라고 판결한 데 대해 미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기독교가 주류인 데다 9·11테러 이후 애국심이 한껏 고양된 분위기에 이 판결이 찬물을 끼얹는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사태의 전말='국기에 대한 맹세'는 미국 사회의 오랜 논쟁거리였다. 미 연방 대법원은 1943년 '아동에게 충성맹세를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판결했지만 교육현장에서는 무시됐다. 88년 대선 때도 이 문제를 놓고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의 마이클 듀커키스가 논쟁을 벌였다. 공립학교 학생은 요즘도 수업시작 전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2년 전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 사는 응급의사 마이클 A 뉴도우의 도전을 받게 됐다. 법학석사 학위도 갖고 있는 그는 "내 딸이 다니는 주립 엘크 그로브 초등학교가 딸에게 충성맹세를 강요해 수정 헌법 1조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소송을 냈다. 연방지역 재판소가 이를 기각하자 그는 제9항소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3인 재판부는 이날 2대1로 뉴도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판결문은 "우리가 '예수 아래' 한 나라에 있다거나, '제우스 아래' 한 나라에 있다거나, '어떤 신 아래도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적었다.

◇엄청난 반발= 판결에 대해 정치권이 가장 앞장서서 반발하고 있다. 상원은 곧바로 반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대부분의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들은 의사당앞 성조기 앞에 몰려가 충성 맹세를 낭독했다. 또 '어리석은 판결' '오사마 빈 라덴이 좋아하겠다'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소수 의견을 낸 제9순회 재판부의 페르디난드 판사는 "하나님 아래란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신이 미국을 축복한다(God bless America)'라는 표현, 동전에 쓰여 있는 '우리는 신을 믿는다(In God We Trust)'는 표현과 무엇이 다르냐"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제9순회법원은 너무 진보적인 경향을 보여 번번이 대법원에서 판결을 파기 당해왔다"고 지적했다.

◇충성맹세란=1892년 침례교목사인 프랜시스 벨라미가 청소년들의 국가관을 높이는 차원에서 처음 만들었다가 1942년 법률로 공식 승인됐다. 문제가 된 '하나님 아래'라는 구절은 당초 없었지만 54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요청으로 삽입됐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충성 맹세 전문>

"나는 미 합중국 국기와 그것이 상징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래 하나의 나라이며 나뉘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이를 위한 자유와 정의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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