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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성공했다고 안심하는 순간, 몰락의 씨는 자라기 시작하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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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짐 콜린스 지음
김명철 옮김, 김영사
264쪽, 1만3000원

문제는 경영이다. 기업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직이 되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머슴’으로 치부하고, 오너 일가의 행복과 번영만을 추구하는 것도 경영이고, 소속원들의 밥줄 구실이란 단순한 기능을 넘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착한 기업’을 만드는 것도 경영이다. 강하고 오래가는 기업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운영되는지를 살핀 책을 골라봤다.

‘책의 가치는 두께와 무관하다.’ 이 책을 보며 든 생각이다. 지은이가 세계적 석학이자 ‘경영의 구루’라서가 아니다. 책은 본문 166쪽에 10편의 부록을 더해도 ‘신서’ 분량에 그친다. 한데 6000년의 기업 역사를 5년간 분석해 위대한 기업들의 몰락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내용은 명쾌하고 알차다.

변화와 혁신이 반드시 기업의 몰락을 막는 것은 아니다. 1980년 초반 ‘문화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획기적 경영변화를 시도했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85~87년 은행 역사상 최대 손실을 기록하는 등 호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사진은 2007년 뉴욕에 건설 중이던 52층짜리 BOA본사의 위용. [중앙포토]

30년 넘게 미국 최우수은행이란 명성을 누리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1980년 새뮤얼 아마코스트를 새 CEO로 뽑았다. 그는 “남들이 우리를 보고 배우게 하자”는 비전을 내세워 지점을 줄이고 종신고용제를 폐지하는 한편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화려한 경력의 ‘변화’컨설턴트들을 고용했다. “최고의 실적을 올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으려는” 아마코스트의 개혁은 ‘개종’ ‘BOA판 문화혁명’이라 묘사됐다. 하지만 강력한 리더십, 획기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BOA는 85~87년 은행 역사상 최대 손실을 기록했다.

95년 세계시장 점유율 50%에 육박하던 휴대전화 제조업체 모토로라는 세련된 디자인의 초소형 휴대전화 스타텍의 출시를 앞두고 한껏 기고만장했다. 무선통신시장이 디지털로 이동하던 터여서 아날로그 기술에 기반을 둔 스타텍의 장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모토로라 고위 경영자 중 한 명은 “4300만 명의 아날로그 고객이 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이냐”고 반론했다. 결과는? 시장점유율이 99년 17%로 떨어졌고, 2001~2003년에 6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지은이는 이런 기업의 몰락사례를 분석해 5단계로 설명한다.

1단계는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다. 기업의 성공엔 운과 기회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가 많은데 자기 능력과 장점을 과대평가하면 내리막의 조짐이 시작되는 것이다. 모토로라가 그런 사례다.

2단계는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다. 역량을 무시하고 더 큰 규모, 더 높은 성장을 찾아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경우다. 월마트의 경쟁사였던 에임스가 외형을 늘리려고 88년 자이레 백화점스토어를 사들였다가 경영전략이 흔들리면서 결국 2002년 청산되고 만 것이 좋은 예다.

3단계는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한다. 이때 쯤 되면 기업의 가파른 하락세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지만 경영진은 부정적 데이터를 축소하거나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며, 조직 내부에서 ‘사실에 근거한 활발한 대화’는 줄어들거나 아예 사라진다. 이렇게 해서 위험에 빠진 기업들은 구원을 찾아 헤매는 4단계에 들어선다. 이 때 흔히 비전과 카리스마가 있는 ‘구원투수’들이 등장해 과감하지만 입증되지 않은 전략, 대히트를 칠 신제품, 판을 뒤집을 합병 등 극약처방을 추구한다.

하지만 묘안에 매달릴수록 추락은 가속화해 모든 출구가 닫히는 5단계로 이행한다. 경영진이 퇴출되고 조직이 축소되는 단계다. 심할 경우 기업 생명이 끝나기도 한다.

성공의 단계에 몰락의 씨앗이 있다는 지은이의 지적은 섬뜩하기도 한데 그렇다면 이를 비껴갈 방안은 없을까. 그는 1, 2, 3 단계에서는 몰락을 충분히 되돌릴 수 있으며 심지어 4단계에 들어선 기업이라도 차근차근 행동한다면 되돌릴 수 있단다. 제록스, IBM 등의 사례를 분석한 결론이다.

이를 위해 리더는 좋은 시절이든 나쁜 시절이든 항상 위기감을 느끼고 꾸준히 개선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리고 회복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건전한 경영활동과 엄격한 전략적 사고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부록으로 뉴코 등 세 기업의 회생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그러면서 2차 세계대전 전 정치적·재정적으로는 물론 신체적으로도 ‘아무도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수렁’에 빠졌던 윈스턴 처칠의 말을 들려준다. 처칠은 41년 모교 졸업식 치사에서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아무리 작은 일도 명예와 현명한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상대의 힘에 눌려 포기하지 마라”고 역설했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안으로는 이미 병이 시작되었을 수 있다. 또 아무리 멀리 앞서가도, 아무리 많은 힘을 갖고 있더라도 누구든 몰락할 수 있으며 대개는 결국 그렇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경영자나 일반인 모두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그러면서도 뜻밖일 정도로 쉽게 읽히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다. 하지만 거듭 말하는데, 흘려 듣기 아까운 내용이 가득하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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