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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은 신바람… 여객기는 찬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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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 호화 유람선에서 승객들이 슬라이드 풀과 암벽 타기를 즐기고 있다. [로열 캐리비언 크루즈 AP=연합]

고유가에 시달리는 같은 여행업종이지만 여객선 사업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는 반면 여객기 분야는 사상 최악의 시련에 봉착했다. 두 업종의 명암은 구조조정 여부로 판가름 났다.

오랜 불황을 딛고 군살을 뺀 세계 유람선 업계는 최근 다양한 수익사업을 펼쳐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에 비해 항공산업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내분에 휘말려 파업으로 날을 지새고 있다.

국제 크루즈협회에 따르면 2003년 전 세계 크루즈 탑승객은 전년 대비 6.6% 증가해 983만명에 달했다. 전체 매출도 2000년 103억달러에서 지난해에는 129억달러로 늘었다.

세계 3대 크루즈 업체인 카니발과 로열 캐리비언, 그리고 P&O는 승객 증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로열 캐리비언의 경우 지난 3분기 연이은 허리케인의 내습이란 악재를 딛고 2001년 9.11 테러 전과 비교할 때 수익이 12.8% 늘었다. 4분기 순익증가율 예상치도 당초 1~3%에서 현재 4~5%로 높아졌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다.

1999년에 9대로 유람선 사업을 시작한 로열 캐리비언은 운항 횟수를 33% 늘렸지만, 승객들의 수요에 댈 수 없을 정도다. 현재 12개 브랜드에 75척의 배를 보유한 카니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 항공업계 가격경쟁의 주역인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들이 미국 오클랜드 공항에 대기하고 있다. [오클랜드 블룸버그=본사특약]

이 같은 크루즈 업계의 호황은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으며 승객들을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크루즈선의 서비스는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 수영장은 기본이고 크루즈 안에 암벽 타기 시설도 갖춰놨다. 골프 코스도 있고, 내년에는 번지점프대도 설치할 계획이다. 로열 캐리비언은 유명 캐나다 서커스단의 공연까지 보여준다.

또 크루즈가 노년층을 위한 상품이란 인식을 깨기 위해 젊은층을 겨냥한 프로그램과 코스를 개발했다. 어린이 손님들을 위해 로열 캐리비언은 피셔-프라이스라는 장난감 업체와 제휴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고유가로 크루즈 업계도 타격을 받았지만 승객이 늘고 있고, 최근 달러 약세까지 겹쳐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비해 세계 항공 업계는 최악의 국면에 빠졌다. 9.11 테러 이후 승객 감소로 대규모 적자의 수렁에 빠진 데다 고유가와 내분이란 삼대 악재가 겹쳤다. 특히 고임금을 고수하는 여객기 조종사들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회사 측과 대립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7위의 항공업체인 US에어웨이가 파산보호(챕터 11)를 신청했고 10위 항공사인 ATA항공도 최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로써 현재 법정관리 중인 유나이티드 항공에 이어 3개 항공사가 법원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의해 운영되게 됐다.

세계 항공 업계에 따르면 올 한 해 미국 항공업체들은 45억달러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고, 9.11 테러 이후 3년간 누적적자만 해도 2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도 한창이다. US 에어웨이는 관리 인원의 38%를 감원됐다. 유나이티드 항공은 조종사들에 대한 연금 지급을 중단했다. 델타항공은 앞으로 1년 반 동안 전체 인원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7000명을 감원하고 허브공항인 댈러스 포트워스 공항을 폐쇄한다고 최근 밝혔다. 이런 구조조정을 통해 2000년 이후 미국 6대 항공사는 전체 인원의 25%인 총 1만명을 해고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78년 미 정부의 규제완화 조치 이후 세계 항공 업계의 요금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지만, 강력한 노조를 등에 입은 대형 항공사 직원들은 여전히 고임금을 고수한 데서 출발한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분석했다.

예를 들어 한때 2위 업체였던 유나이티드 항공은 직원들이 회사 지분 55%를 인수, 종업원 지주회사가 되면서 무리한 임금 인상으로 회사가 어려워졌다. 경쟁업체인 사우스웨스트는 비행기당 직원수가 86명이지만 유나이티드는 173명이나 돼 경쟁력을 상실했다.

여기에다 올해 오일쇼크는 항공 업계에 치명타를 입혔다. 연료비가 총 비용의 20%를 차지하는 항공업체로선 유가 상승이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여객선, 기는 여객기-. 앞으로 항공 업계는 고유가와 고임금 등 비용 상승, 가격경쟁 심화, 승객 감소라는 삼각파도를 맞아 상당기간 비상의 날개를 접을 수밖에 없게 된 반면 일찍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여객선 업계는 순항을 계속할 전망이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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