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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나우디뉴 4강 축포 삼·바·슛 35m 환상킥으로 축구 종가 잉글랜드 울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브라질-잉글랜드 경기가 벌어지기 전날 영국의 한 목사가 인터넷에 기도문을 올렸다.

"신이시여. 호나우두·히바우두·호나우디뉴가 당황하게 해주소서."

그러나 정작 당황해서 결정적인 실수를 한 쪽은 잉글랜드의 철벽 수문장 데이비드 시먼이었다. 인간의 어리석은 기도에 신은 거꾸로 응답한 것이다.

1-1로 맞선 후반 5분, 브라질이 잉글랜드 진영 오른쪽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골대와의 거리는 약 35m. 호나우디뉴가 볼을 갖다놓고 힐끗 골대 쪽을 바라봤다. 골키퍼 시먼이 크로스가 올라올 줄 알고 몇 발짝 전진해 있는 게 보였다.

호나우디뉴는 크로스를 날리는 척 하면서 직접 골을 노렸다. 크게 휘어나간 볼은 깜짝 놀라 황급히 뒤돌아선 시먼을 넘어 왼쪽 골네트 구석에 박혔다.

영국 기자는 경기 후 "그건 사고(accident)였다"고 말했다. 정확한 표현이었다. 이 골 이후 경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꼬여나가기 시작했다. 호나우디뉴는 역전골을 넣은 지 7분 만에 대니 밀스가 공을 차는 순간 밀스의 발목에 발을 얹는 고약한 반칙으로 레드카드를 받았다.

전반은 아름다운 경기였다. 잉글랜드는 수비 후 역습, 브라질은 공격적인 드리블 돌파로 자신들의 색깔을 분명히 했다. 양 팀의 골도 이 공식에 따라 만들어졌다. 전반 23분 잉글랜드의 에밀 헤스키가 오른쪽에서 문전으로 롱패스를 띄웠다.

브라질 중앙수비 루시우에게 차단될 것 같던 볼은 그의 다리를 맞고 오른쪽으로 흘렀다. 맹렬한 속도로 뒤쫓아온 '원더 보이'마이클 오언이 그 볼을 낚아채 두세발짝 달린 뒤 오른발로 톡 찍어찼다. 골키퍼 마르쿠스가 타이밍과 방향을 뺏기고 반대쪽으로 몸을 날리는 순간 볼은 네트 한가운데에 꽂혔다.

집요하리만큼 꾸역꾸역 중앙돌파만 고집하던 브라질이 전반 인저리 타임에 결국 뜻을 이뤘다.

이날의 히어로 호나우디뉴가 하프라인에서 볼을 잡아 가운데로 치고들어갔다.

앞을 막아선 콜이 '헛다리짚기' 페인팅 한 번에 나가떨어졌다. 오른쪽에서 쇄도하는 히바우두를 향해 수비수 두 명 사이로 스루패스가 깔려나갔고 히바우두는 몸을 틀어 지체없이 왼발 슛, 잉글랜드의 골문을 열었다.

다섯 경기에 한 골씩,히바우두가 득점 공동 선두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후반 중반을 넘어서면서 잉글랜드 선수들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교묘한 시간 끌기에 말려 리듬을 잃어버린 것이다.

데이비드 베컴은 페널티지역에서 두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시도하는 그답지 않은 플레이를 했다. 주심은 그에게 경고를 주지 않았지만 브라질 선수들의 시간 끌기에도 옐로 카드 한 장 꺼내지 않았다.

잉글랜드 응원단에서 '신이여,여왕을 구하소서'라는 국가가 간절하게 울려퍼졌지만 구원의 빛은 비치지 않았다.

골키퍼 시먼의 긴 킥이 브라질 문전에 도달하는 순간 주심은 야속하게 종료 휘슬을 불어버렸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를 좌절시킨 '삼바 군단'의 역사가 32년 만에 재현됐다. 일본인들은 '제2의 홈팀'을 잃어버렸고, '닭벼슬 머리'베컴도 숱한 여성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시즈오카=정영재·정현목 기자

가끔 10명으로 연습한 효과봐

▶루이즈 펠리페 스콜라리 브라질 감독

무척 기쁘고 긍지를 느낀다. 경기 내내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주심이 호나우디뉴를 퇴장시킨 것은 아주 잘못된 판정이다. 수적 열세에도 선수들이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리드를 지켜 이길 수 있었다. 평소 훈련 때 가끔 10명으로 지키는 연습도 했었다. 당시 주변에선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오늘 이 경기에서 10명으로 연습했던 효과를 톡톡히 봤다.

선수들 지쳐 수적 우세 못살려

▶스벤 고란 에릭손 잉글랜드 감독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쉬운 경기였다. 수적으로 앞섰지만 우리 선수들이 너무 지쳐 뛰지를 못했다. 반면 브라질 선수들은 볼을 지키는 데 아주 뛰어났다. 이것이 우리와 브라질의 차이점이다. 비록 패했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대부분 젊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좋은 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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