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8강]한국 구한 설기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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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광판 시계는 후반 4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태극전사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거센 몸싸움을 뿌리치며 끊임없이 파고들었다.바로 그때였다.극적인 동점골이 터진 것은-.

벼랑 끝에 몰린 한국을 구해낸 사람은 바로 '천덕꾸러기' 설기현이었다.설기현은 아주리의 가슴에 피멍처럼 붉은 상처를 남기며 미국전 부진 후 자신에게 향했던 비난을 말끔히 털어버렸다.

황선홍의 대를 이을 한국 대표팀의 간판 골잡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만큼 월드컵을 준비해온 지난 1년반 동안 그는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 부임 후 월드컵 직전 열린 프랑스와의 평가전까지 그는 단 한골을 기록하는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그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고, 결국은 끝까지 자신을 믿어준 히딩크 감독에게 보답했다.

1998년 청소년 대표로 태극마크를 처음 단 설기현은 올림픽 대표(99년)를 거쳐 2000년 대표팀에 선발되는 소위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광운대를 졸업하던 2000년 국내 프로무대의 보장된 성공을 뒤로 한 채 유럽 진출에 나섰다. 벨기에 주필러리그 중위팀인 로열 앤트워프에 입단한 설기현은 팀의 주공격수 자리를 꿰차고 시즌 24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이듬해 주필러리그 1위인 안더레흐트로 옮긴 설기현은 이적한 지 한달 만인 8월 벨기에리그 수퍼컵에 출전,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어 유럽 프로축구의 정상을 가리는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해 예선 3라운드 스웨덴 할름스타트전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득점선수'가 됐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부상이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허벅지 부상을 당한 그는 점차 소속팀 내 주전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닥친 또 하나의 시련은 히딩크 감독이 "규칙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에게는 주전 자리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재활에 매달렸다.히딩크 감독이 강조하는 체력에서 동료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그는 무척이나 땀을 흘렸다. 지난 3월 유럽전훈 직후 대표팀에 합류한 뒤 부상의 악몽에서 점점 벗어나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대전=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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