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클린룸 패널 제작 삼우EMC 정규동 사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반도체 클린룸의 패널을 만들거나 시공하는 ㈜삼우EMC,이 회사의 정규동(丁圭東·54)사장은 업계에서 괴짜로 통한다.

우선 서울 인의동 본사 2층의 네평 남짓한 사장실에 가 본 사람들은 흔한 소파 하나 없는 데서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사무실 안을 둘러봐도 큼직한 책상, 자개로 만든 번쩍이는 사장 명패가 없다. 대신 한복판에 널따란 원탁이 자리잡고 있다. 이게 업무를 처리하고 회의도 주재하는 그의 책상이다. 이 정도니 비서 또한 있을리 없다. 전화를 직접 받고 커피도 자신이 끓여 대접한다. 승용차 역시 손수 몬다.

"격식을 싫어하고 자율을 강조하다보니 이런 습성이 생겼어요."

그의 업무 스타일은 파격적이다. 대리 이하의 사원 채용은 담당 부장이 결정하도록 한다. 부장이 필요하면 뽑고 남으면 알아서 줄이면 되지, 사장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좀처럼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 참석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입사 후 몇달동안 사장 얼굴을 모르고 지내는 직원도 있다.

2백여명 직원 가운데 자신을 빼면 기업주의 친인척이 한사람도 없다. 그는 사주인 정규수 회장의 실제(實弟). '조직을 움직이는데 걸림돌이 된다'면서 이 회사에서 일하던 조카 두명을 그만두게 했다. 적잖은 중소기업이 인척경영 때문에 어려워진 것을 그는 잘 안다.

丁사장의 이런 파격은 2000년 3월 부사장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부서장에 책임과 권한을 대폭 넘겨준 것. 결재서류의 90%는 담당 임원 전결로 바꾸었다. 그 전에는 사장·부사장 사인을 받느라 임직원들이 몇시간씩 기다리곤 했다. 사장·부사장이 시시콜콜 전표나 챙기기보다 회사의 큰 그림을 구상하는데 몰두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삼우EMC에선 자금을 사업부별로 관리한다. 이런 권한에는 물론 책임이 따른다. 매달 말 대리 이상급 간부가 모인 가운데 부서장이 부서별 매출·자금 지출 내역을 발표해 생산성을 비교·평가한다.

"중소업체는 사장 한사람 없으면 회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게 보통이지요.2005년이면 확 바뀔 거예요. 누가 사장이 돼도 회사가 잘 굴러가도록 토양을 만들겁니다."

丁사장의 실험은 1980년부터 12년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유통업을 하면서 익힌 미국식 경영방식이 모태다. 형의 요청으로 귀국해 관리이사를 맡으며 회사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한 그는 부사장이 되면서 소신을 펴기 시작했다.

'인적·물적 자원이 빈약한 중소기업으론 너무 앞서간다'고 주변에서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의 유연성이 높아지고 매출이 급속히 느는 등 결과가 좋자 이런 걱정은 많이 사라졌다. 1999년에 임직원 2백13명에 매출액 6백40억원이던 것이 1년 만에 직원은 1백83명으로 줄면서 매출은 8백22억원으로 늘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천여억원으로 잡았다.

1978년 설립된 이 회사는 국내 반도체 클린룸 패널 시장의 85%를 점한다. 최근 고층 건물 외벽을 알루미늄 패널로 덧씌우는 커튼 월 사업에 진출했다.

김상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