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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주권침해 시비 겹쳐 탈북자 처리 장기화할 듯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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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국 보안·공안요원의 한국대사관 영사부(총영사관) 침입과 한국 외교관 폭행사건, 총영사관 진입 탈북자 18명의 신병처리 문제가 장기화할 전망이다. 한·중 양국이 주권침해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맞서 있고, 그런 만큼 탈북자들의 신병 처리 협상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 측은 주권 침해를 부인하는 입장을 언론을 통해 흘렸을 뿐 사건 발생 사흘이 지나도록 공식 입장을 우리측에 전달해오지 않았다. 속도조절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김빼기 전술'의 인상을 풍긴다. 중국 측의 강경 대응은 외교부보다는 군부·공안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서 정부는 감정적 맞대응은 않고 있지만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사안을 둘러싼 입장차나 양국 정부 내의 정서에 미뤄 문제해결의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주권침해 문제=자칫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 중국이 보안요원의 총영사관 침입을 인정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4일 류젠차오(建超)외교부 대변인의 언론 설명에서도 일단이 드러났다. 베이징(北京)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한국 정부에도 같은 입장을 전달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중국은 지난달 공안요원이 선양(瀋陽)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들어가 탈북자 5명을 연행했을 때도 주권침해 문제에는 완강하게 나왔고, 결국 이 문제는 흐지부지됐다.

이번 사건은 일본 외교관이 공안 진입에 모호한 태도를 보였던 선양 사건과는 다르다. 그러나 중국이 주권침해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점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춰 중국이 우리 측 요구사항인 탈북자 元모(40)씨의 신병인도(원상회복), 사과·재발방지, 관련자 문책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한국 외교관 폭행사건에는 물타기 자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외교관의 신체적 불가침권을 침해했다는 우리측 주장에 대해 중국측은 우리 외교관이 중국 공안의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할 것으로 관측통들은 본다.

◇주권침해와 탈북자처리 연계될 듯=중국은 탈북자 18명의 한국행에는 강경 입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주권침해 문제에 수세적일 수밖에 없는 만큼 탈북자들의 인도주의적 신병처리에 성의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 측이 증인 다수를 확보한 주권침해 문제는 미제(未濟)로 남겨두고, 자신들이 칼자루를 쥔 탈북자 문제는 양보하는 방안이다. 중국은 선양 사건 때도 강제 연행해간 탈북자 5명을 제3국으로 추방함으로써 일본의 주권침해 공세를 피해갔다. 중국이 주권침해 문제와 인도주의적 문제해결 모두에 등을 돌리면 우리 측의 대응수위는 올라갈 것이고, 이는 중국에도 부담이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인권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일본·유엔은 이미 중국의 주권침해 및 탈북자 처리문제에 대한 우려의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탈북자 신병처리 문제는 의외로 속도가 붙을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중국이 연행해간 元씨도 총영사관에 들어가 있는 탈북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신병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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