웸블리 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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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결승전이 벌어진 웸블리 구장. 전·후반을 2-2로 비긴 잉글랜드와 서독은 연장전에 들어갔다. 연장 전반 11분 잉글랜드 제프 허스트의 슛이 골대를 맞고 골라인에 떨어졌다. 주심은 부심과 논의 끝에 이를 골로 인정했다. 결국 이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허스트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서독을 4-2로 누르고 우승했다.

이때 생긴 말이 '웸블리 골'이다. 영국인들은 잘 쓰지 않지만 당시 패배에 한 맺힌 독일인들은 아직도 이 말을 즐겨 쓴다. 독일어로는 '웸블리 토어'(Tor)다. 원래 골대를 맞고 골라인에 떨어져 득점으로 인정된 골을 뜻했으나 지금은 골대를 맞고 나온 볼을 통칭한다.

지난번 월드컵 챔피언 프랑스가 이번 대회에서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하는 치욕 끝에 귀국길에 오르게 되자 말들이 많다. 프랑스의 부진이 징크스 때문이라거나 지네딘 지단의 부상 때문이라고들 했다가 지단마저 투입해 사력을 다한 덴마크전에서 2-0으로 완패하자 "신이 프랑스를 버렸다"는 한탄이 나왔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세차례 경기에서 다섯번이나 웸블리 골을 기록할 정도로 승리의 여신은 프랑스를 외면했다.

그러나 그게 다 실력이다. 결국 프랑스 축구가 몰락한 것은 징크스나 지단의 부상, 불운 때문만이 아니었다. 경기에서 생생히 드러났듯 세대교체에 실패해 선수들이 노쇠한 데다 초호화 스타들의 자만심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프랑스의 탈락을 지켜보면서 묘한 느낌도 든다. 축구는 축구일 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장 마리 르펜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간 프랑스의 '아트사커(예술축구)'가 세계 최강으로 군림해온 데에는 '중동·아프리카 혼성팀'이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인종구성이 한 몫을 했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 받아들이는 프랑스 특유의 톨레랑스(관용)가 세계 최강의 하모니를 창출했다.

그러나 극우 인종주의자 르펜에겐 이게 불만이었다. 그는 "외국선수들을 데려다 놓고 프랑스팀이라 부르는 것은 억지"라며 이들이 국가조차 부를 줄 모른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 르펜을 지난번 대선에서 프랑스 국민들의 18%가 지지했다.

물론 프랑스 축구의 몰락을 프랑스 사회의 우경화 현상과 연결지어 해석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선 그런 유혹을 느낀다. 과연 르펜이나 그의 지지자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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