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외신들 "응원 질서도 원더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전국이 열광한 10일은 우리 국민의 수준 높은 질서의식을 보여준 날이기도 했다.

태극전사들과 함께한 70만 가까운 군중의 거리 응원도, 또 경기가 끝난 뒤의 뒤풀이도 흐트러짐 없이 치러져 월드컵 개최 국민으로서 손색없는 품격을 과시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우려했던 반미(反美)시위도 눈에 띄지 않았다.

◇외국 언론도 감탄한 질서있는 응원=오후 들어 쏟아붓는 빗줄기에 옷을 흠뻑 적시면서도 길거리 응원 시민들은 "대~한민국""오~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특히 뒤에 앉은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우산을 접고 비를 맞는 모습도 눈에 띄었고 대부분은 부근 가게에서 우비를 사입었다.

이런 모습에 AP통신·NHK 등 30여개에 달하는 외국 언론사의 기자들은 "원더풀"을 연발했다.

영국 ITV의 카메라기자 플로레스 빅토르(37)는 "12년간 축구담당 기자로 일하며 월드컵 취재만 세번째지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말했다.

경기가 끝난 뒤 시민들은 붉은 악마 회원들의 주도로 비를 맞으며 앉아있던 자리의 쓰레기를 주우며 뒷정리를 해 수십만명이 빠져나간 후에도 쓰레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광화문 주변에서 비에 흠뻑 젖은 채 신문지 등을 줍던 김동영(22·여·서울 동작구 상도동)씨는 "당연한 일"이라며 "이렇게 해야 우리가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범정(16·고1)군은 "이 나라에 태어난 게 자랑스럽다"라고도 했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야외무대에서 TV를 통해 경기를 지켜본 5만5천여명의 시민들도 경기 내내 쏟아진 폭우에도 불구하고 동요없이 응원에 열중했고 질서정연하게 귀가했다.

대구 경기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서울시 소방방재본부에는 경기가 끝난 이후인 오후 6시까지 시내에서 월드컵과 관련된 구조·구급신고가 단 한건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시청역을 무정차 통과했던 지하철 운행도 곧바로 정상화되는 등 차분했다.

◇묻혀 버린 반미시위=한총련과 주한미군철수국민운동본부 등이 계획했던 반미 시위는 길거리 응원 열기와 경찰의 저지에 묻혀 버렸다.

한총련 소속 대학생 1백여명은 경기 시작 전 '×× USA'가 쓰인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서울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등 거리 응원장으로 모였다.

그러나 반미 시위의 자제를 촉구하는 붉은 악마 주최측의 당부,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들의 "대~한민국""오~필승 코리아" 등의 응원소리에 압도돼 각 대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신 경희대·서울산업대·한국외국어대·한양대 등 캠퍼스 내에 전광판을 설치한 대학에서만 경기 전 반미 구호를 외치는 약식 집회가 열렸다.

대구에서는 대학생 20여명이 국채보상기념공원 일대에서 차기 전투기 사업과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오노 사건 등을 소재로 반미 선전전에 나섰으나 군중의 무관심으로 이내 수그러들었다.

이날 오전 2개 중대 2백여명을 미국대사관 주변에 배치했다가 경기 직후 10여개 중대 1천여명으로 늘렸던 경찰은 오후 7시쯤 평상시 경비병력만 남기고 모두 철수시켰다.

다임러 크라이슬러 코리아의 웨인 첨리(49)사장은 "한국과 미국이 1승씩을 거두고 오늘은 사이좋게 무승부로 끝냈다"며 "모든 것이 개운한 날이었다"고 말했다.

이승녕·이무영·손민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