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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퍼붓기와 빚탕감 대신 경쟁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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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쌀시장 개방협상이 사실상 타결돼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하는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쌀수입 전면 개방을 앞으로 10년간 더 유예하되,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물량을 늘린다는 것이 합의내용의 골자다.

쌀농가와 농민단체들은 이 같은 합의내용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협상결과는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가 세계 무역질서의 틀에서 벗어나 자급자족 경제로 돌아가지 않는 한 쌀시장 개방을 언제까지나 무조건 미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 완전개방 시점까지 벌어놓은 10년을 어떻게 쓰느냐다. 1993년 UR협상 이후 개방유예기간 중의 농업정책은 실패했다. 무려 70조원을 쏟아붓고도 농업 경쟁력은 오히려 뒤로 밀렸고, 농가의 빚만 늘어났다. 앞으로 10년을 또다시 이런 식으로 허송세월할 수는 없다.

정부는 쌀 개방에 대비해 앞으로 10년간 119조원을 농촌개발에 투입하겠다는 마스터플랜을 내놨다. 그러나 농촌에 돈을 퍼붓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묻지마식 농가지원'이나 '선심성 농가빚 탕감'이 빚은 폐해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얼마나 심각한지 똑똑히 보아왔다.

정부는 앞으로 농정의 중심을 '농업'이 아닌 '농촌'개발에 두겠다고 밝혔다. 경쟁력 없는 작물의 재배를 지원하기보다, 농업이든 농업 이외의 사업이든 농촌 주민들이 농촌에서 안정적인 소득원을 마련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책 전환은 잘한 일이다. 이미 지방자치단체 중에는 지역특성을 살린 개발계획을 세워 활로를 모색하는 곳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특산물을 특화하거나, 관광을 연계시킨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거나, 이른바 웰빙산업을 유치하는 등의 아이디어가 만발하고 있다.

앞으로 정부가 투입하는 재원은 지역개발사업처럼 경제성 있는 사업과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효율성을 무시한 투자는 확대 재생산이 아니라 오히려 빚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