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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또 울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세계 최강으로 꼽히던 프랑스의 침몰에 프랑스 국민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월드컵 우승 후보 중 하나인 포르투갈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지구촌의 월드컵 무풍지대였던 미국도 월드컵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대(對)우루과이전에서의 필승을 기원했던 프랑스 국민은 무승부를 기록, 16강에서 한발 더 멀어지자 고통·절망을 토로하면서 동시에 격렬하게 프랑스팀을 성토하기도 했다.

6일 오후 파리시청 앞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으로 경기를 관전한 대학생 장 뤼크 바우스만(19)은 "FIFA컵은 이미 우리를 떠났다"고 탄식하며 고개를 떨궜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뜨렸으며 여기 저기서 소리를 죽이며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분을 참지 못하는 열성 남성 축구팬들은 프랑스어로 욕을 하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간혹 "감독은 물러나라"는 소리도 들렸고 "지단은 뭐하는 거냐"라는 말이 욕설과 함께 들리는 듯했다.

내과의 티에리 델퐁(45)은 "너무 실망했다. 저런 팀이 어떻게 평가전에서 한국을 이겼는지 모르겠다. 프랑스보다 한국의 실력이 훨씬 낫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파리시청에서 만난 한 30대 남성 축구팬은 "오늘 프랑스는 울음바다가 될 겁니다"라고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후 퇴근시간 가깝게 시합이 종료되면서 울분을 술로 달래려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아직 밝은 시내 노천 카페에서는 답답함을 씻어내려는 듯 맥주를 들이켜는 사람들이 보이더니 어둠이 짙어가면서 이런 사람이 더 늘어났다. 그러나 일부에선 "덴마크를 대파해 16강 진출의 막차를 탈 수 있을 것"이라며 한줄기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프랑스팀의 임종이 조금 연기됐다." 개막전에서 세네갈에 패한 충격이 가시지도 않은 프랑스대표팀이 우루과이와도 0-0으로 비기자 프랑스 언론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간 르몽드도 '실패한 10명의 블뢰(프랑스대표팀)'란 제목으로 "개막전을 놓친 프랑스팀으로선 16강 진출을 위해 놓칠 수 없는 경기였지만 10명의 선수론 역부족이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팀이 전후반 90분 내내 별다른 득점 기회를 잡지 못하고 어렵게 경기를 풀어가자 프랑스 국민들은 부상으로 결장한 지네딘 지단의 부재를 더욱 더 안타까워했다. 영업사원 그레고리 랑팔(26)은 "TV엔 온통 지단이 공을 차는 광고만 나오는데 정작 경기장에서는 볼 수 없다"며 투덜댔다. 특히 한국과의 친선경기에서 부상한 지단이 개막전에 이어 이날 경기에도 나오지 못하자 파리의 일부 초·중·고생 사이에 한국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기도 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앙리가 퇴장당한데 대해 일제히 '너무 가혹한 처사'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6일 "맹목적인 애국주의자가 아니라도 너무 가혹하다"고 했으며 민방 TF1도 "너무 심한 결정"이라며 판정을 비판했다.

○…"경마도, 마이크 타이슨과 레녹스 루이스의 프로권투 헤비급 타이틀전도, 미프로농구(NBA) 결승전도, 프로야구도 다 잊어라. 오는 월요일 빅 이벤트가 온다."(뉴욕 타임스)

포르투갈을 누른 미국이 한-미 전에 포신(砲身)을 맞추고 있다. 6일 뉴욕 타임스는 "한국이 폴란드를, 미국이 포르투갈을 누름으로써 D조는 생사를 가늠키 어려운 새로운 '죽음의 조'가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으로서는 '붉은 악마'로 대표되는 한국 관중의 열광적 응원도 부담스럽다. USA 투데이는 "수원경기장에서 열린 미국-포르투갈 전의 관중수는 3만7천3백6명이었지만, 한-미 전이 열리는 대구경기장의 좌석수는 6만5천8백석"이라면서 "대구에서는 아예 귀마개를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월드컵 개막전인 프랑스-세네갈 전과 아일랜드-카메룬 전이 북한에서 지난 주말 연일 방영된 것과 관련, 국제축구연맹(FIFA)과 월드컵 중계권을 갖고 있는 독일의 미디어 그룹 키르히가 각각 조사에 착수했다고 6일 영국 BBC 방송이 보도했다. 키르히 관계자는 "북한에서 어떻게 월드컵 경기가 방영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면서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워싱턴·파리=김진·이훈범 특파원,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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