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프랑스 시골 주민 65명 월드컵 원정 응원 "개막전 졌지만 우승할거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알레 레 블르(가자 프랑스팀)."

프랑스가 개막전에서 복병 세네갈에 패한 31일 밤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스탠드 한켠에선 재미있는 복장으로 끝까지 환호를 보낸 한 무리의 프랑스인들이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 국기(삼색기)를 본떠 파랑과 빨강색이 어울린 전통 의상에 흰 털로 테두리친 모자를 쓴, 노인에서 10대 소년까지의 65명. 프랑스의 작은 도시 됭케르크를 떠나 전날 아침 한국에 온 사람들이다.

됭케르크의 서포터 연합에 속한 축구광들로, 농부에서 카펫 판매상·대학생·축구용품 제조업자 등 직업도 나이만큼이나 다양하다.

경기 내내 어깨동무를 한 채 프랑스 국기를 흔들며 응원가를 부른 이들은 끝내 쉰 목과 숯덩이가 된 가슴을 안고 경기장을 떠났지만 미소는 잃지 않았다.

부인·딸과 함께 온 알랭 루아첼(55·카펫상)은 "비록 한 게임을 지긴 했지만 결국 프랑스팀의 우승을 확신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미셀 루프(44·상업)는 "지주(지단의 애칭)가 부상했고 예기치 못한 패배도 했지만 반드시 보람을 안고 돌아갈 것"이라며 "낮선 동양에서 조국팀을 응원하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이들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난 뒤 이번 월드컵 구경을 위해 4년간 쌈짓돈을 모았다고 한다. 대부분이 한국은 물론 아시아가 초행길이며, 일행 중엔 여비 마련을 위해 아끼던 자동차를 판 사람도 있다고 했다.

프랑스 최북단에 위치한 됭케르크는 파리에서 2백70㎞ 떨어진 도버해협 연안의 인구 7만명의 항구도시다. 지리적 이유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과 독일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여 폐허가 되다시피 했으나 지금은 프랑스의 주요 무역항 중 하나가 됐다.

회장인 아르멜 베베르(31)는 "처음 와 본 서울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도시여서 어지러울 정도"라며 "하루를 지내면서 만난 사람들의 친절함과 깨끗한 거리가 아주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프랑스어 외엔 영어조차 거의 못하는 '촌사람'들이지만 21세기 첫 월드컵을 직접 지켜본다는 기쁨에 들떠 있다. 응원에 쓸 대형 프랑스 국기와 응원 복장도 고향에서 준비해 왔다.

보름간 한국에 머물며 모국팀의 예선 세 경기를 모두 본 뒤 일단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잡아두었다. 하지만 프랑스팀이 결선에 진출하면 다시 함께 일본으로 몰려 가 응원을 할 예정이다.

이날 경기장엔 이들 65명 외에도 줄잡아 1천명이 넘는 프랑스 축구팬이 몰려 열광과 아쉬움을 토해냈다.

지난해 아시아지역 프랑스 응원단 협회를 만들었다는 실비 르루아(36·여)는 "한국에 거주하는 8백여명과 일본의 8백여명, 중국의 4백여명이 다 함께 월드컵 응원을 펼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홍주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