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판사 30명 한국법 견학 “한·중 FTA시대 되면 범죄 이동도 늘 텐데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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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고려대에서 열린 ‘한·중·일 통상분쟁’ 특강이 끝난 후 중국인 판사들이 이 학교 로스쿨 학생들과 양국 사법체계에 대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1일 오전 서울 안암동의 고려대 해송법학도서관 지하강의실. 이 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주최로 ‘한·중·일 통상분쟁’을 주제로 한 특강이 열렸다. 강의실에는 30명이 앉아있었다. 이들은 모두 중국 전역에서 온 현직 판사들이었다. 나이도 2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은 시장 개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품과 서비스와 자본의 이동, 그 다음 단계는 ‘범죄와 죄인들의 자유로운 이동’이다. 테러·마약 등의 범죄가 양국을 오가며 발생할 수 있고 결국 이 부분은 법원에서 다뤄야 할 문제다.”

고려대 박노형 교수(로스쿨)의 열띤 강의가 이어지자 중국인 판사들은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경제 문제로만 생각했던 한·중 FTA가 결국은 법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에 크게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이들은 빔 프로젝터로 띄워놓은 강의 내용을 카메라로 연방 찍어댔고 강의가 끝난 뒤에는 강의자료를 따로 부탁해 챙겨가기도 했다.

중국인 판사들이 고려대 로스쿨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것은 지난달 28일. 일주일 동안 한국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30명에 달하는 중국인 판사가 다른 나라 법을 배우기 위해 외국을 단체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숑옌(29·여) 판사는 “짧은 기간에 한국 경제가 급성장한 데는 정당한 법 집행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준 사법부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며 “중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배우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고려대 로스쿨 측은 “한·중 관계의 중요성을 고려해 중국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법 연수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특강이 끝난 뒤에는 이들과 고려대 로스쿨 학생 20명이 즉석 간담회를 했다. 로스쿨 학생 손현채씨는 “중국에 투자하려는 한국 기업은 중국 사법체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소송이 제기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샤오휘(44) 판사는 “중국 국내법을 우선 잘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 관련 규범을 존중하고 있으니 중국 법원 판결의 공정성을 신뢰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판사들은 해양 유류오염 사건, 임금 체불 사건 등 한국 기업이 당사자가 됐던 재판 경험도 소개했다.

이들은 5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국회·법원·헌법재판소·로펌을 찾아 특강을 듣는 등 한국법을 공부할 예정이다.

글=박유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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