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오바마가 ‘사회주의자’? 진짜 무서운 건 중국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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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사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뒤로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오바마를 ‘사회주의자’라고 몰아붙였다. 물론 그가 시장경제 원칙을 허물고 미국의 경제 골격을 분배주의로 뒤집으려는 증거는 희박했다. 오바마 비판자들의 모호한 질타는 대중에게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공포감을 불러왔다. 그러나 공격수들의 말을 경청해 보면 그들이 비판하려는 대상은 ‘국가 자본주의’처럼 들린다.

만약 오바마가 ‘국가 자본주의자’라면 어떨까. 미국을 돌려놓으려 했을 것이다. 국가가 주된 경제 주체로 등장하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나라가 1차적으로 시장을 요리하는 그런 시스템으로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바마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고, 남은 임기에도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소모적 논쟁만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점점 뚜렷해지는 ‘국가 자본주의’가 미국 시장경제를 위협하지만 여기엔 관심들이 없다.

그렇다면 왜 오바마는 ‘국가 자본주의자’가 아닌가. 분명히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경제적 개입을 주재한 인물이다. 오바마는 헤비급 금융사와 자동차 업체를 정부가 인수토록 허락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정부가 보유한 기업 지분을 지렛대 삼아 경영진 보수를 제한했다. 또 일자리를 늘리고 보건 혜택을 확대하기 위한 복리후생용 지출을 크게 늘리면서 이미 하늘로 치솟는 재정적자가 앞으로 몇 년간 더 늘어날 태세다.

그러나 금융위기 와중에 오바마가 ‘하지 않은 일들’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미국의 대형 은행을 국유화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가 열렸지만 정부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금융 규제를 손질할 때도 백악관과 양대 정당은 다른 기업들엔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손을 맞잡았다. 정부가 소유한 지분들은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관리했고, 씨티은행과 제너럴모터스(GM)의 주식도 몇 달 안에 처분하길 바라고 있다.

만약 국가 자본주의자라면 이와는 정반대로 움직였을 것이다. 국가가 경제의 주연배우라고 믿는 대통령은 기업 지분을 움켜쥐고 주주권을 발동해 기업경영 방식을 바꿨을 것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시장을 이용하는 대통령이라면 정부 소유의 기업에 특혜를 줘서 경쟁질서를 약화시키고 원하는 정책 목표를 얻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그렇지 않다.

투자시장에 대한 정치적 위험의 조언자로서 우리는 정부의 행동이 시장에 영향을 준다고 강력하게 믿는다. 그런 일을 하다 보니 투자자들이 오바마의 개입 정책에 불만을 늘어놓는 것도 자주 듣게 된다. 그러나 시장은 그런 투자자들이 정부 개입에 실제로 공포를 느끼는지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 국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을 지금의 소유자로부터 국가나 빈곤층으로 이전한다는 뜻이다. 만약 투자자들이 진정으로 그런 일이 빚어질 것으로 느꼈다면 주식시장이 지금처럼 회복세를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오바마를 둘러싼 사회주의자 논쟁에서 핵심은 바로 ‘보건개혁’이다. 오바마가 미 경제에서 덩어리가 큰 보건 부문을 가다듬기 위해 ‘위기의 정치술’을 구사한 건 분명하다. 그가 통과시킨 법안은 보다 많은 국민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정부 지출 부담을 크게 늘렸다. 모든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퍼블릭 옵션’이라고 불린 공적 의료보험의 도입은 포기했다. 이 제도는 정부의 실질적 개입을 가늠해 볼 수 있었던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았다. 오바마 폄하자들이 사회주의식 보건개혁이라고 깎아내리는 동안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헬스케어 지수는 전임 부시 행정부 시절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오바마는 국가 자본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아니다. 단지 전임자들보다 많은 사회적 이슈를 떠안아 법안으로 통과시킨, 전형적인 민주당 출신 대통령일 뿐이다.

진짜 위험한 건 대통령을 놓고 하찮은 논쟁에 시간을 날리면서, 정작 해외 국가들의 개입정책으로 미국 경쟁력이 훼손되는 건 걱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국유기업 발흥은 미 기업들이 강력한 정부 지원사격을 등에 업은 경쟁자들과 맞서야 한다는 걸 뜻한다. 이런 국가 자본주의 흐름이 해당국 번영을 위해 당연시되면 다른 나라도 따를 것이다. 실제 중국은 그들의 경제 모델이 금융위기 타격을 적게 받았다고 공언하고 있다. 타국이 흉내내면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미국의 자유시장경제는 점점 해고의 압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압박은 워싱턴의 정치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해외의 국가 자본주의로부터 오고 있다. ⓒTRIBUNE MEDIA SERVICES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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