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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미르의 북한 망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견원지간(犬猿之間)의 인도와 파키스탄은 가공할 핵무기를 가졌다. 상대방의 대도시·군사기지·산업시설에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도 가졌다. 두나라가 전쟁을 하면 인도의 10억 인구와 파키스탄의 1억4천의 인구가 충돌하는 큰 재앙이 온다.

그래서 우리는 카슈미르를 둘러싼 전쟁 히스테리가 새벽녘 북한강의 물안개처럼 서남아시아 대륙에 피어 오르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보는 것이다. 두나라의 핵과 미사일에 바탕을 둔 공포의 균형이 전쟁을 막아줄 것이란 아이러니에 희망을 건다.

노동미사일 개조한 가우리

국력을 단순비교하면 파키스탄은 인도의 상대가 안된다. 국내총생산에서 1999년 기준으로 인도의 4천4백73억달러는 파키스탄의 6백억달러의 일곱배가 더 된다. 정규군은 인도 1백30만, 파키스탄 61만으로 2대1의 비율 이상으로 인도가 우세하다. 그러나 일단 핵과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 통상적인 국력과 재래식 군사력의 우열은 의미가 거의 사라진다. 북한이 미국의 위협에 대한 최소한의 억지력(Deterrence)으로 핵·미사일을 가지려는 것도 이런 논리에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지금 세계의 전략가들 사이에 가장 큰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곳이 파키스탄의 카후타에 있는 칸 핵·미사일 연구소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관심은 전략가들의 일반적인 관심보다 구체적이다. 그것은 이 연구소에서 개발된 가우리 미사일의 원조(元祖)가 북한의 노동미사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재야에 있던 1998년 7월 의회의 '미사일 위협에 관한 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북한의 미사일 수출에 관한 보고서를 의회에 냈다. 럼즈펠드 보고서는 그해 봄 파키스탄이 시험발사한 미사일 가우리1은 사정거리 9백마일의 북한 노동미사일의 변형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미사일에 관한 최고 권위자의 한사람인 조셉 버뮤데즈와 그의 말과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한 워싱턴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북한의 미사일 수출창구인 창광신용회사를 통해 미사일의 핵심 부품뿐 아니라 미사일 관련 기술과 미사일에 핵탄두를 싣는 장치인 캐니스터까지 수입했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자들은 칸 연구소의 가우리1 시험발사 현장에 있었다.

파키스탄에 대한 북한의 미사일 수출이 국제적인 파장을 일으킨 것은 수출을 성사시킨 배후에 중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M-11 미사일을 파키스탄에 제공하다가 미국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쳤다. 중국은 편법으로 북한에 금융지원을 해 파키스탄에 노동미사일을 대신 수출하게 했다(뉴욕 타임스). 파키스탄은 노동미사일을 가우리1로 다시 개량해 지금은 가우리2와 가우리3을 개발 중이다.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전쟁까지는 가지 않아도 서남아시아 대륙이 전쟁의 벼랑끝에 오래 머물면 파키스탄의 핵무기와 미사일은 세계적인 주목을 더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가우리 미사일 개발을 가능하게 만든 북한은 부시 정부 사람들에 의해 대량살상무기 수출국가로 더욱 널리 선전될 것이다.

北韓 죽이기 명분될 수도

전쟁의 위기 앞에 선 인도·파키스탄 분쟁은 표면적으로는 카슈미르에 관한 영토분쟁이다. 그래서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분쟁의 저변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특히 파키스탄의 정치가 충분히 세속화되지 않고, 부족주의와 과격한 이슬람을 흡수할 만한 보편적인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복잡한 현실이 버티고 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파키스탄의 통치자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은 터키 근대화의 아버지 케말 아타튀르크 같이 되고싶어 한다. 그는 군인이면서도 파키스탄에서는 가장 자유주의적인 지도자의 한사람이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명예와 존엄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전쟁을 피하지 않겠다는 국내용 강경발언에서 그의 리더십의 한계가 보인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한가지다. 서남아시아 대륙의 위기가 엉뚱하게 미국의 북한 죽이기에 더 이상의 명분을 보태기 전에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북한에는 더 낭비할 이미지의 저축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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