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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규명,갈 길 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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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다 숨진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에 대해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을 내렸다. 30년 가까이 은폐됐던 공권력의 만행을 국가기관 스스로 드러내 바로잡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위원회가 이번 조사에서 崔교수 타살의 직접적 증거는 밝히지 못했으나 중정 수사관의 고문, 곧 공권력에 의한 사망을 밝혀낸 것은 의미가 크다. 당시 자살로 처리된 崔교수 사건이 이번 조사에서 중정 측의 고문사실 은폐,각종 문서·현장 조작, 관련자 허위진술, 증거인멸 기도 등 타살의 정황이 입증된 데 따른 것이다. 崔교수가 고문으로 사망한 뒤 창문 밖으로 내던져졌거나 직접 타살이 아니더라도 심한 고문과 모욕·협박이 죽음에 영향을 주었다고 본 위원회의 판단은 합당하다. 사건 발생 후 오랜 시간이 지난데다 고문에 가담하거나 현장을 목격한 관련자 두명이 해외로 도주해 위원회의 조사를 극력 거부하는 등 어려움 속에서 이 정도로 진상에 접근한 것도 큰 진전이다.

의문사 진상규명 작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재작년 10월 출범한 위원회는 진정사건 78건·직권사건 5건 등 권위주의 정권 시절 공권력에 의한 억울한 죽음 83건의 진상을 규명해야 하나 지금까지 16건 처리에 그치고 있다. 오는 9월 16일이 조사시한인 까닭에 경찰·군·국정원 등 피진정기관이 차일피일 미루며 조사에 협조하지 않아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 불행했던 과거를 바로잡는 일에 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잘못된 과거를 밝히는 것은 비슷한 과오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이지만 의문사에 관련된 기관이나 당사자 대부분은 참회에 인색하다. "공소시효가 지났는데 마음대로 해봐라"는 식이다. 이런 점에서 반인도적 국가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토록 특례법을 제정하자는 시민단체의 주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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