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강남·북 균형 개발:학원도 술집도 "가자! 강남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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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장면1=지난 1월 한국전력의 전봇대 없애기 사업이 도마에 올랐다. 전선을 땅에 묻는 배전지중화(配電地中化) 사업에 5백억원을 투입하면서 최근 7개년간 강남·서초구에 예산의 3분의 1을 배정한 반면 동대문과 중랑·은평·도봉구 등은 그동안 지중화 예산을 구경도 못했다.

한전은 "엄청난 돈이 드는 사업이어서 어느 곳이나 해줄 수는 없다"고 해명했지만 강남구의 삼성로와 학동로에 대해서는 없던 계획까지 만들어 전액 한전 예산을 투입해 지중화 사업을 벌였다. 반면 강북은 8개 사업 중 6개를 각 구청이 공사비의 일부를 부담하는 자체 요청 사업으로 겨우 마무리했다.

◇장면2=서대문구 홍제동에 사는 A중학교 2학년 李모(14)군은 매주 화·목요일 저녁 대치동으로 항한다. 내년 과학고 입시를 위해서다. 오후 11시쯤 수학 특강을 끝으로 학원 문을 나서면 직장이 강남인 아버지(44)가 차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시간을 때우다 시간에 맞춰 아들을 데리러 오는 일과를 벌써 1년째 반복하고 있다. 李군은 "이렇다할 명문고도 없는 강북에서 과학고에 들어가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강북 4대문 안 지역에는 10년 전부터 입시학원 신·증설을 법으로 막아왔다.

◇장면3=최근 입주가 시작된 강북구 미아1동의 SK북한산시티. 강북지역에 새로 들어선 최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로 꼽히지만 아침 출근길에 가장 가까운 지하철 길음역까지는 마을버스를 타고 20분은 가야 한다. 유일한 탈출구인 삼양로가 항상 막히기 때문이다.

강북구청측은 "아파트 단지 안에는 고급 기반시설을 갖췄지만 외부와 연결되는 사회기반시설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아 빚어진 문제"라며 "숨통을 트려면 2008년께 경전철이 들어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면4=오전 1시 성수대교 위에는 음주운전 검문이 한창이다. 강북에서 압구정동 쪽으로 가는 차량은 대부분 무사통과다. 이에 비해 강남에서 강북으로 올라오는 승용차에는 검문 경찰관들이 반드시 측정기를 들이밀고 수치를 확인한다. 쏘아보는 경찰관의 눈초리도 매섭다. "검문 때문에 밤인데도 차량이 너무 밀린다"는 항의에 경찰관은 이렇게 대답한다. "강남에 가서 술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강북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진 거지요."

서울시는 그동안 강북 4대문 안 지역에 카바레 등 대형 유흥업소의 신·증설을 금지해 왔다.

서울 강남북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강남구의 재정자립도(2001년 12월 기준)는 90.4%인데 강북구는 30.4%에 불과하다.

도로 면적은 강남구(5백34만㎡)가 강북구(1백60만㎡)의 3.3배에 달한다.

입시학원 수(서울시 교육청 2002년 4월 기준)도 강남교육청 관할엔 6백65개지만 중부교육청 관할에는 1백65개뿐이다.

개인재산을 가늠해볼 수 있는 아파트 평균 평당 가격도 강남구 아파트의 경우 1천4백99만원으로 가장 싼 금천구(5백21만원)의 2.9배에 달한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삶의 질에 질려 할 수 없이 강남으로 옮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중구 신당동의 주부 김성미(40)씨는 3년 전 분양받은 50평대 새 아파트를 팔고 지금은 개포동에 30평짜리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다. 내년에 중학교에 진학할 아들을 위해서다. 金씨는 "그동안 강남 사람들은 적통 대군이고, 강북 사람들은 천덕꾸러기 서출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강남북 격차의 원인을 교육·교통·문화·산업 등 모든 게 강남으로 빨려들어가는 이른바 '강남 블랙홀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고건 서울시장은 "지난 10년간 투자사업비 책정에서 강남과 강북의 비율을 3.5대 6.5로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올해는 1조1천5백억원의 자치구 지원교부금을 재정자립도를 감안해 강북지역에 집중적으로 나눠줄 예정이지만 강남북 격차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다.

서울시 허영 도시관리과장은 "강북을 집중 개발한다고 해도 상암지역이나 뚝섬을 제외하고는 대규모 토지가 남아있지 않다"며 "워낙 도로·교육·유통시설 등 강북의 도시 기반시설이 취약해 부분 개발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격차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고 격차를 완화'하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산업대 행정학과 남궁근 교수는 "강남북 불균형을 풀려면 강북의 삶의 질을 높이도록 눈에 보이는 구체적 대안을 시가 나서서 내놓아야 한다"며 "특목고·자립형 사립고 등을 강북에 많이 만들어 주고 강북 의 낡은 사회기반시설도 대폭 손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박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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