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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이끈 美的감각 튀는 잡지의 모든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0면

젊은이들 문화의 진원지이자 디자인·인테리어 등 실용 미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매체. 잡지라면 잡다한 읽을 거리로 치부하고 매거진이라 불러야 좀더 고급한 것쯤으로 여기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 말을 단박에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특히 서구사회의 잡지는 TV 시대 이전에는 독보적인 시각 매체로 예술가들의 미적 감각을 자극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을 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만 레이 같은 사진가를 대중에게 소개시킨 매개였으며 새로운 타이포그라피, 독특한 레이아웃을 시도하는 문화 실험장이었다. 잡지의 역사는 20세기 예술사의 집약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통일성·단순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 풍토부터 '나만의 자유, 나만의 표현'을 표방하며 디자인 문법을 파괴한 해체주의까지 잡지 디자인사는 서구 철학 사상의 궤적을 꿰뚫고 있다.

인테리어 잡지 '메종' 등 수많은 잡지의 아트 디렉터 경력을 지닌 저자 유정미는 미학적 관점에서 잡지 역사를 논하고 있다. 이 책은 신문방송학과에서는 배우는 '주르날 데 사방''소년'같은 잡지의 최초란 의미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런 잡지들보다는 아름다운 잡지에 손을 들어주고 '보그''하퍼스 바자'같은 패션지, 음악잡지 '롤링 스톤스', 스타일 잡지 'i-D'를 이야기한다.

'보는 잡지'들의 텍스트 전달 방법과 실험적인 레이아웃은 가게의 쇼윈도,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광고 제작에까지 변화를 가져왔다. 잡지 표지 한장이 실생활에서 발견하는 모든 미적 표현 양식을 지배한다는 것인데 이런 결과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유럽 예술가들의 영향력이 컸다. 유럽 예술과 미국의 대중 매체가 결합해 잡지는 실용적이되 세련된 표현 양식으로 발달해 갔기 때문이다. 러시아 망명객 출신인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같은 아트 디렉터는 유럽의 모던 디자인의 정신을 미국에 이식시키고 그가 디자인한 '하퍼스 바자'는 패션의 개념을 옷 자체가 아니라 스타일이라는 광범위한 주제로 확장시켰다.

또 1990년대 최고 디자이너라 불리는 데이비드 카슨은 전위적인 타이포그라피로 가독성 논쟁까지 불러일으키며 X세대의 성원을 받았다. 괴상한 디자인의 글씨를 맘대로 키우고 죽여놓은 카슨의 잡지에서 젊은이들은 인습을 타파하는 쾌감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영상시대인 현재까지도 잡지 생명력이 여전한 것은 이처럼 기존 가치의 전복을 꾀하는 잡지 아트 디렉터들의 아방가르드적 성향에 힘입은 바 크다. 따라서 저자는 저명한 아트 디렉터 소개에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이들이 전달하고자 한 사상과 사회적 파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뒷부분의 잡지 디자인 실무에 관한 조언은 상당히 전문적이다.

홍수현 기자

이 책은 한국 잡지에도 후한 점수를 준다. 우리나라 최초로 아트 디렉션 제도를 도입한 '뿌리깊은 나무', 디자이너 황부용이 잡지 전문 서체를 개발해 제목 글자로 만든 '디자인' 등에 의미를 두었다. 무엇보다 한국 잡지사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네모꼴 글자를 벗어난 안체를 소개한 안상수로, 그는 '마당''멋'을 만들었다. 펼침 페이지로 시원하게 사진을 쓰는 등 상당한 파격을 시도했으며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로댕 갤러리에서 이달 말 그래픽 디자인전을 열 정도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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