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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승의 구도과정 웃음 섞어 경쾌하게 표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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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3면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6월 9일까지 학전 블루)는 극중 주인공이 도를 깨닫는 과정을 담았다.

내용상 갈래를 나누면 '구도연극'이랄까. 그렇다고 "어려운 연극이겠구나"하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연극적으로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부드러워 박장대소할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힘의 원천이다. 중견 극작자 이만희(48·동덕여대 교수)씨는 한때 짧지 않은 산사 생활을 했다.

불교의 깨달음을 갈구했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다. 이 연극은 그의 두번째 희곡(1992년 초연)으로 당시 경험의 조각이 엿보인다. 인물의 설정과 대사·잡다한 풍경의 묘사가 거칠고 생경하거나 공소하지 않은 이유다. 무대에서는 그런 솔직함이 잘 표현됐다.

연극은 죽은 도법스님(최정우)과 수행 동료였던 탄성스님(정종준)의 시공을 떠난 만남으로 시작한다. "왜 죽었느냐"를 따지는 탄성의 도발적인 물음에 대한 도법의 해답이 연극의 본론에 해당한다. 이후 연극은 3년 계획으로 자신의 원력(願力)을 시험하기 위해 불상 제작에 매달리는 도법의 구도 과정을 보여준다.

도법과 그를 괴롭히는 망령(최승일)의 대결은 이 연극의 클라이맥스다. 어느 날 '시달림'(尸陀林·불교에서 죽은 이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설법)을 나갔다가 망령을 만나면서 그의 불상 제작은 한계에 부닥친다.

망령이 작별주를 마시러 온 마지막 날, 그와의 다툼 끝에 도법은 조각칼로 자신의 두 눈을 찌른다. 그 순간 도법은 '세상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음(일체유심조)'을 깨닫는다.

이 세상에 미추(美醜)는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의 두 눈이 바로 그 세속적인 구분의 한계였다는 얘기다. 결국 그는 집착에서 비롯된 불안의 그림자였던 망령의 모습을 그대로 조각해 불상을 완성함으로써 도를 구한다.

거창한 주제라도 만약 연극이 이런 내용으로 일관했다면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이런 우려를 날려버리고 일체유심조를 '중생의 도'로 환기시키는 것은,도법도 탄성도 아닌 '땡초'같은 월명스님(지춘성)이다.

질펀한 마당극의 사설을 연상시키는 그의 입담 한 대목은 이렇다. "해가 떠서 밝다고 보는 것도 한때의 마음이며 해가 져서 어둡다고 보는 것도 한때의 마음인 것이다. 탄성아 알아듣겠느냐?"

초연 연출가였던 강영걸은 이 작품을 "희곡의 으뜸"이라고 말할 정도로 애착을 보인다. 개인의 구원을 예술과 종교·사회의 보편적 차원으로 다양하게 넓혀 볼 수 있는 탄탄한 기교 때문이다. 12년 만의 재회에서 그는 자평(自評)에 걸맞은 연출로 보답했다.

배우의 조련술이 특히 발군이어서 '배우연극'의 드문 성과로 꼽을 만하다. 은연중 호모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공호석(원주스님)과 지춘성·최승일 등의 안정감 있는 연기에서는 '강영걸사단'의 골기가 역력하다.

이 작품은 '한국색'을 앞세워 미국의 오프 브로드웨이 등 외국 무대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내용의 특이성뿐만 아니라 무대·의상의 멋도 남루하지 않아 괜찮은 문화상품이 될 요소들을 갖췄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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