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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중앙박물관에 문화재 기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저는 김해(金海) 김(金)씨의 후손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제가 평생 모아온 아시아 각국의 유물을 한국의 대표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이 전시해주신다고 하니 더 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일본인 가네코 가즈시게(子重ㆍ77)는 20일 자신이 아껴온 아시아 각국 유물 5백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에 기증하는 자리에서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성(姓)이 가네코인데, 이는 한반도 남쪽 고대국가였던 가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왕족 김해 김씨의 후손이라고 해석했다. 유물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열변을 토하던 그는 자신이 건강한 것도 "김치를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혈통만 아니라 체질도 '한국형'이란 자랑이다.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평생 아시아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또 아시아 각국을 답사하면서 살아왔다. 그간 모아온 유물이 대략 1만점. 지금도 '아시아민족조형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아시아 각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한국과의 인연은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한 1965년 시작됐다.

"일찍부터 아시아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각국을 답사했습니다. 한국에도 일찍 오고 싶었는데 국교가 없어 어려움이 있었지요. 65년 국교가 정상화하고 가장 먼저 한국을 찾은 일본인이 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경주를 처음 갔을 때 그것이 '일본 고대문화의 원형'이라고 직감했습니다."

당시 그와 인연이 닿은 사람이 곽소진(郭少晋·75·한국저작권센터 소장)씨다.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문정관으로 근무하던 郭씨는 주 일본 미국대사관측의 연락을 받고 가네코를 맞아 한국 내 여행을 주선했다. 당시 郭씨가 가장 먼저 소개한 인물이 초대 중앙박물관장인 고(故) 김재원(金載元)선생. 이후 한국 고고학계와 가네코의 인연은 한번도 끊이지 않았다. 그는 한국땅을 모두 50여 차례 찾았고, 한국인 친구들에게서 "중앙박물관이 용산에 새 박물관을 지으면서 '동양실(室)'에 전시할 유물이 부족하다"는 걱정을 듣고는 선뜻 기증을 약속했다.

태국의 선사유적지에서 출토된 2천년 전 토기, 19세기 미얀마에서 불경을 보관하기 위해 제작한 금궤, 중동의 시리아에서 3~4기께 제작된 유리병 등 유물 2백51점을 지난달 말 1차로 서울에 들여왔다. 나머지 2백50여점은 7월 중 들여올 예정.

가네코는 이날 추가 기증의 뜻을 밝혔으며, 중앙박물관은 용산 박물관이 완공되면 '가네코 기증실'이란 이름의 독립 전시공간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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