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삶의 희망 일깨운 거친 바다의 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쉬핑 뉴스'는 정상급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제값을 하는 영화다. 'LA 컨피덴셜''아메리칸 뷰티'의 케빈 스페이시, '부기 나이트''매그놀리아'의 줄리언 무어,'엘리자베스''반지의 제왕'의 케이트 블란쳇,'셰익스피어 인 러브''아이리스'의 주디 덴치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동했다.

감독의 명성도 만만찮다. '개 같은 내 인생'으로 세계 영화계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이후 '길버트 그레이프''사이더 하우스''초콜릿'등을 연출했던 스웨덴 출신의 라세 할스트롬이 메가폰을 잡았다.

완성도도 높은 편이다. 각기 다른 사연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자기의 인생을 찾아가는 과정이 촘촘하게 그려진다. 여기에 북극해에 위치한 뉴펀들랜드 지역의 험난한 자연이 겹쳐지면서 아름답고 처연한 휴먼 드라마가 펼쳐진다.

'쉬핑 뉴스'는 언뜻 문명과 자연의 대조를 강조하는 듯 하다. 만사가 기계처럼 돌아가고, 그 안에서 무력하게 생활하는 현대 도시인과 시원하게 트인 바다와 싸우며 거친 생명력을 이어가는 어촌 사람들이 대척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바닷가 고향에서 그간 잊고 살았던 삶의 원기를 회복한다는 점에서도 문명 비판적 성격을 띠고 있다.

케빈 스페이시 등 호화배역

하지만 '쉬핑 뉴스'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순박한 작품이 아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분열되고 해체된 현대 가족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때문에 간혹 우화(寓話)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초콜릿이란 달콤새콤한 음식을 내세워 가족·이웃간의 사랑을 묘사했던 전작 '초콜릿' 비슷하게 할스트롬 감독은 거칠게 몰아치는 뉴펀들랜드의 해풍을 산산조각난 현대인의 썰렁한 마음을 봉합하는 접착제로 사용한다.

주요 등장 인물은 정신적 불구자들이다. 수영도 못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구박을 받고 성장해 아무 일도 자기 뜻대로 펴지 못하는 뉴욕 시민 쿼일(케빈 스페이시), 어릴 적 오빠에게 당한 성폭행으로 평생 사랑다운 사랑을 하지 못한 쿼일의 고모 아그니스(주디 덴치), 바람둥이 애인에게 버림받고 성장장애증에 걸린 아들을 데리고 살아가는 웨이비(줄리언 무어) 등.

북극해 배경 따뜻한 인간애 그려

'조폭 마누라'처럼 기세 등등한 아내(케이트 블란쳇)의 위세에 기를 펴지 못하고 살던 쿼일이 아내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평소 왕래가 거의 없었던 고모 아그니스와 함께 고향인 뉴펀들랜드로 돌아가 그동안 자신이 잊고 살았던 삶의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줄거리다.

'쉬핑 뉴스'는 뉴펀들랜드의 지역 신문에 소개되는 선박과 관련된 소식을 일컫는 말. 뉴욕의 대형 신문사에서 윤전공으로 일했던 쿼일은 고향의 작은 신문사에서 '쉬핑 뉴스'코너를 취재하는 기자로 취직, 바다와 동고동락하며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공감을 넓혀간다.

한때 바닷가 해적으로 암약했던 그의 조상들에 관한 비밀스런 에피소드가 첨가되면서 때론 미스터리 스릴러 같은 분위기도 배어나온다.

영화의 강약 조절에선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느낌이다. 상황 설정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초반과 달리 후반부는 다소 지루하게 전개된다. 18세 이상 관람가. 24일 메가박스 개봉.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