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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사관 아파트 건립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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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서울 용산 주한 미군기지 안에 미군 아파트 건립을 허용한데 이어 중구 정동 옛 덕수궁 터에도 미 대사관 직원용 아파트 건설을 허가해 주기 위해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덕수궁과 옛 러시아 공사관, 정동교회 등 문화유산이 몰려 있는 정동 일대에는 앞으로 미 대사관(15층)과 캐나다 대사관(9층)등 고층건물이 잇따라 들어설 예정이어서 문화 경관이 훼손될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는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이 일대에 대한 보호를 소홀히 하고 있어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아파트 건설 추진=건교부는 17일 "최근 미 대사관측이 덕수궁 후문 맞은편의 정동 대사관저 인근에 54가구 규모의 8층짜리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며 협조를 요청해 주택건설촉진법(주촉법)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현행 주촉법에는 2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을 지을 경우 주차장과 어린이 놀이터·상가 등 부대시설을 갖추어야 하며 일반 분양하도록 되어 있다.

미 대사관측은 이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아파트를 짓기 어렵다고 판단되자 토머스 허버드 대사가 직접 임인택 건교부장관과 고건 서울시장을 만나 대책 마련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건교부는 대사관 직원용 아파트를 주촉법이 적용되는 일반용 시설이 아닌 비교적 규제에서 자유로운 공공업무용 시설로 간주하는 예외규정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

건교부 최재덕 광역교통정책실장은 "이 아파트는 외교관 시설로 봐야 하기 때문에 주촉법 시행령 적용은 무리라고 판단해 예외조항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파트 예정부지에 유물이 매장돼 있을 가능성도 있어 지난달 미 대사관측이 신청한 건축물 심의 신청서를 반려했지만 정부 차원의 결정이 내려지면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마구잡이 개발 우려=지난해 7월 주한 캐나다 대사관이 이 지역에 9층 건물 신축을 신청하자 서울시는 일반주거지역(용적률 3백%)을 준주거지역(4백%)으로 용도를 바꿔 허가를 내줬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미 대사관측이 옛 경기여고 부지에 2006년 입주를 목표로 15층짜리 공관과 8층짜리 공관숙소 등 3개 동(棟)에 대한 교통영향평가를 신청했다. 시는 일단 주차공간 부족을 들어 반려한 상태이나 재추진은 불보듯 뻔하다.

문화재 보전지역인 덕수궁 반경 1백m 이내 지역에 대한 고층건물 규제 수단은 서울시의 지침인 고도제한(8~9층) 외에는 없어 실효성있는 제재가 어려운 실정이다.

◇대책=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남은경 간사는 "법을 바꿔가면서까지 덕수궁 옆에 아파트 건설을 허용하려는 것은 국민 정서를 무시한 행위"라며 "법개정 저지투쟁을 벌이겠다"고 주장했다.

단국대 조명래(도시·지역계획)교수는 "문화재 주변에 대한 건축 행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혜경 전문기자,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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