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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 탈북자 인도적 처리 외치지만… "우리 땅엔 NO" 이중 태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최근 중국에서 잇따르고 있는 탈북자들의 망명 사태가 국제사회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이전까지는 당사국인 남북한과 중국 사이의 '뜨거운 감자'에 불과했지만 최근 탈북자들이 스페인·독일·일본·미국·캐나다 등 서구 대사관과 영사관에 무차별적으로 들어가 망명을 요구하면서 일이 복잡하게 꼬이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국들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행이 아니라 자기 나라를 망명지로 택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외교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탈북자 문제가 외교적 '님비(NIMBY)' 현상이 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님비란 일반적으로 필요한 줄은 알지만 "내 뒷마당에는 안된다"며 완강히 저항하는 이기주의적 행태를 가리킨다. 관련국들이 겉으로는 탈북자 문제의 인도적 처리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자국에 수용하는 데에는 한결같이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당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최근 두차례에 걸쳐 중국 선양(瀋陽)주재 미국과 일본 총영사관에 들어간 탈북자 8명이 한국이 아닌 미국행을 고집하자 고민에 빠졌었다. 이와 관련, 미 뉴욕 타임스는 지난 11일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탈북자들의 미국행 요구가 "미국을 외교적으로 난처하게 만들 뿐 아니라 지난 2월 북한 주민들에게 큰 동정심을 표시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탈북자들을 정치난민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북한 주민에 대해 깊은 동정심을 갖고 있다"고 공언해 온 부시 대통령으로선 겉다르고 속다른 속내를 드러내는 셈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14일 "미국은 탈북자들의 처리 문제와 관련, 북한 송환 반대와 인도적 처리를 주장하면서도 이들에 대한 난민지위 인정문제에 대한 입장표명을 회피하고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이어 신문은 "미국 등은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고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역시 탈북자 문제에 대해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일본은 그동안 인권과 관련된 각종 조치를 취해왔고 이를 외교의 중요한 목표라고 선전해 왔다.

그러나 정작 탈북자들의 인권문제에 자국이 연루될 때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 언론이 보도한 대로 아나미 고레시게(阿南惟茂) 주중 일본 대사가 "북한 탈출 주민이 대사관에 들어올 경우 수상한 사람으로 간주해 쫓아내라"고 지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와 관련,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13일 "일본 총영사관에서 강제로 끌려나온 북한인들의 운명도 오랫동안 중단 상태에 있는 북·일 수교회담을 재개하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그 배경을 분석하면서 "선양 사건은 인간의 안전에 대한 일본의 도덕적 책임의식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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