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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정치 종식 언론이 앞장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어느 '권력 벤처'의 행각을 통해 '국민의 정권'내막 한 자락을 엿본 '최규선 녹음 테이프'(7일자 4·5면,8일자 4면)를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간접적으로나마 확인 가능한 부분이 있다면 이에 대한 해설이나 관련기사로 보완했으면 한다. 또 여타 관련비리와 연계돼 있다면, 별개로 보도되는 사건들을 연관시켜 추론할 친절한 보충기사도 필요하다. 개인 행적만 부각하는 수사나 보도가 장기화하면 정작 비리의 중요한 배경인 권력의 사유화 경향이나 구조적 병폐는 쉽게 묻혀버린다. 비판적 언론이라면 이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중앙일보가 시도하는 대통령 후보의 비교검증도 정치와 국가권력을 공공의 영역에 되돌려 놓을 적임자를 가려내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대선 예비주자 노선 해부'(4월 12일자 1·4·5면)가 서면 질의응답을 근거로 한 성향 비교를 통해서 '공부하는 신문'의 자세를 보였다면, 이회창·노무현씨의 발언기록을 제시하면서 정책 경향을 9개 분야로 나눠 비교한 도표(10일자 4면)도 그 연장선에서 명백한 근거가 있는 항목만 비교함으로써 기사의 객관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정책이라는 것은 가변적이고 다소 애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을 보완해줄 구체적인 비교항목을 추가했으면 한다. 예를 들어 청와대와 정부 조직, 당정관계, 국무위원 및 주요 임명직에 기용할 인사의 명단을 각 후보가 선거 이전에 공개토록 유도하면 어떨까? 사람 쓰는 것을 보면 그의 사람됨을 안다. 받아쓰기만 잘하는 '초등 내각' 대신 각 분야의 정책을 책임질 전문인으로 '고등 내각'을 만들고 격려할 수 있는 후보자의 안목과 그릇의 크기를 가늠케 하는 자료의 제공은 독자를 위한 중요한 서비스일 것이다. 인사 청문회도 한다는 마당에 후보들이 이를 마다할 명분은 없다. 말 뒤집기가 체질화된 기존 정치관행에서 볼 때 이것이 최상의 방법은 아니지만, 비선을 활용한 권력의 사유화나 가신정치에 제동을 걸고 최종 선택을 해야 할 유권자를 위해서라도 선거 정국의 주요 언론이라면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서울보다 뉴욕·LA를 더 잘 아는 '미국통'이 그렇게 흔한데도, 또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이후 '세계'와 '변방'의 문턱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자청해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지 소로스 같은 일개 금융상인과 선이 닿을 국제적 인맥조차 확보하지 못한 우리 정치권의 '국제적 자폐증'과 글로벌 네트워크의 정책적 육성에 대한 기획취재가 필요하다. 외화내빈의 국제행사, 주객이 전도된 영어교육, 콘텐츠 없는 '인터넷 강국' 따위를 세계화의 지표로 착각하는 순진함도 문제지만, 화장실 단장 삼매경에 빠져 난수표 같은 출입국 신고서는 그대로 방치해 온 배짱(11일자 6면, '삶과 문화-왜 겉만 신경 씁니까?')도 따지고 보면 정치권의 고질인 국제적 기준에 대한 무신경을 입증하는 단적인 사례다.

'아파트 3채가 빌라 꾸짖나'(9일자 8면 취재일기)에서 꼬집은 것은 직업 정치인의 위선이다. 위선이 위선을 욕하는 '도마뱀 제 꼬리 잘라먹기'에 대한 지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시동 켜놓은 대형 승용차를 의사당 현관 앞에 줄지어 대기시킨 채 '개혁'과 '민생' 운운하는 것은 더 가증스럽고 일상화된 집단적 위선 아닌가? 내친 김에 주차장까지 걸어가지도 못하는 이런 촌스런 '가마문화'로부터 시작해서 세계 수준의 문화와는 아예 담을 쌓은 정치권 일각의 '특수 교양'도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비판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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