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경의 쿠데타” … 돌출행동? 성과주의 압박에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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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8일 서울경찰청의 총경급 간부는 “군(軍)의 쿠데타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채수창(사진) 서울 강북경찰서장(총경)이 자신의 지휘관인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에게 공개적으로 사퇴를 촉구한 것이 그만큼 충격적이라는 얘기다. 조 청장을 비롯한 서울경찰청 지휘부는 ‘조직에서 뒤처진 중간관리자의 돌출행동’이라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파문은 확산될 전망이다. 특히 경찰조직의 동요가 다른 공직사회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8일 취임한 조 청장은 경찰의 인사와 업무 전반에서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를 내걸었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인 ‘성과주의’에 대한 공무원 사회의 피로감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휘부와 조직 관리 방식 다를 수 있다”=이날 오전 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조 청장 주재로 긴급 회의가 열렸다. 채 서장의 항명 기자회견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되면서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조 청장은 “경찰의 가혹행위(서울 양천서) 사건 등으로 직원들 사기가 저하돼 이를 회복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채 서장은 기자회견에서 조 청장과 명확한 대립각을 세웠다. 채 서장은 “부하 직원들에게 새로운 집행부의 실적주의를 강요한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양천서 가혹행위 사건의 책임이 실적 경쟁에 매달리도록 분위기를 조장한 서울경찰청 지휘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채 서장은 “경찰대를 졸업(1기·1981년 입학)하고 25년째 소신껏 국민을 섬기면서 일했는데 새로운 경찰 집행부가 들어오면서 그런 것들이 물거품이 됐다”며 “실적에만 매달리고 비참한 현실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청장과 조직 관리 방식이 달라 검거 실적도 꼴찌를 했다. 그러나 꼴찌 한 것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서울경찰청은 “성과주의 원칙은 공사 조직 어디든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관리기법”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 치안 만족이 진정한 실적이고 성과이지 검거 실적만을 평가하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채 서장이 성과주의의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돌출행동을 했다는 것이 경찰 수뇌부의 판단이다. 서울청 관계자는 “강북서는 서울의 31개 경찰서 중에서 꼴등을 했을 뿐만 아니라 개선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 같은 평가가 여러 곳에서 나와 집중 감찰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반면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최근 경찰뿐만 아니라 공무원 사회 전반에 성과와 실적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번 사건이 공무원 사회에 상당한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심껏 일하지만 성과가 부족한 공무원을 자로 잰 듯 평가하고 질타하는 분위기 때문에 공무원 사회의 불만이 높다는 것이다.

◆경찰의 구조적 갈등 표면화=채 서장의 항명은 경찰대 출신 경찰 간부와 비경찰대 출신 간부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향후에 있을 경찰청장 승진 인사를 놓고 외무고시 출신인 조 청장을 음해하려는 세력이 있고, 이를 조 청장이 경계하면서 경찰대와 비경찰대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수철 사건과 양천서 가혹행위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경찰 지휘부가 모든 책임을 일선 경찰관에게 지우고 감찰을 강화하는 등 책임을 피하려 한 것이 화근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성과주의가 과열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112 신고 실적을 올리기 위해 경찰관이 허위로 신고하고 자신이 출동하는 사례도 있다”며 “양천서의 가혹행위도 그 같은 과열 양상의 결과”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청장은 “가혹행위는 인권의식이 결여된 극소수의 범죄행위일 뿐 성과주의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성과주의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대책을 꾸준히 도입하고 있고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할 사람이 총경급의 중간 관리자”라고 설명했다.

강인식·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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