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공공외교 필요성 일깨운 월드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년 한·일 축구 월드컵으로 한국이 세계에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도 한국 하면 한국전쟁을 우선 떠올리는 외국인도 많다. 그만큼 국가 홍보는 힘들다. 자국민의 마음을 얻기도 힘든데 다른 나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당연히 더 힘들다.

우리나라를 외국에 올바르게 알리려면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강화해야 한다. 외교관을 중심으로 정부와 정부 간에 벌어지는 ‘엘리트 외교’와 달리 공공외교는 외국의 일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대민(對民)외교다. 엘리트 외교와 마찬가지로 공공외교의 목표는 국익의 추구다. 공공외교가 잘돼야 엘리트 외교도 잘된다. 상대국 여론이 우리나라에 우호적이면 상대국 정부가 여론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

공공외교는 사실 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외교나 문화외교도 공공외교와 상당 부분 겹친다. 그러나 공공외교가 훨씬 포괄적이다. 공공외교를 위해 동원될 수 있는 행위자와 수단도 다양하다. 최근 영국에서 개최된 공공외교 회의에서는 종교와 스포츠가 공공외교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이번 우리나라 대표팀의 월드컵 16강 달성도 분명 공공외교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그리스도교의 해외 선교도 공공외교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김연아 선수가 성호(聖號)를 긋는 것도 효과적인 ‘공공외교적 행위’일 수 있다. 유럽이나 중남미의 그리스도교인이 김 선수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면 말이다.

공공외교는 사실상 ‘프로파간다’와 동의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현대적 의미의 공공외교는 미국에서 탄생했다. 미국인들은 완곡어법(euphemism)을 좋아한다. 임산부(pregnant woman)를 ‘mother-to-be(어머니 예정자)’, 동물(animal)을 ‘non-human animal(비인간 동물)’이라고도 부르는 게 미국식 언어습관이다. 전체주의를 연상시키는 프로파간다라는 말 대신 공공외교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국익 추구에 엘리트 외교만으로는 불충분하기에 세계 각국은 공공외교도 치밀하게 구사해왔다. 공공외교는 미·소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하는 데 유용한 도구였다. 안와르 사다트,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마거릿 대처와 같은 지도자들이 공공외교의 일환으로 전개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서 공부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공공외교는 이슬람권 국가를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앞으로 국제 공공외교 무대에서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롭다. 세계 88개국 282개의 공자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중국은 2009~2010년에 공공외교에 87억 달러를 투입한다.

우리가 공공외교를 강화할 때 그 주체는 정부와 민간 중 어느 쪽이 맡으면 좋을까. 어쩌면 해답은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라는 말 자체에 있다.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이 영국에서는 사립학교, 미국에서는 공립학교를 의미한다. 퍼블릭(public)에는 ‘보통사람의(of ordinary people)’뿐만 아니라 ‘정부의(of government)’의 뜻도 있는 것이다. 공공외교의 대상은 다른 나라의 보통 사람들이지만 주도는 정부가 하는 게 자연스럽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은 공공외교 전담 고위 공무원직을 두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3월 공공외교 전담 정부 부처를 설립했다.

이스라엘에서는 공공외교를 ‘하스바라’라고 부른다. 히브리어로 ‘설명’ 또는 ‘정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사례를 참조한다면 온 국민이 ‘공공외교관’이 되기 위해선 국가적 사안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