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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G8 만찬 현장감독 모리키 아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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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G8 정상회의 만찬은 2008년 때보다는 단출했다. 8개국 정상과 유럽연합(EU) 위원장 등 9명만 참석한 데다 부인도 대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부(副)버틀러장을 맡았던 요리학교 츠지조 그룹교의 모리키 아키라(왼쪽 사진) 서양요리전임교수는 “애초엔 부인을 대동하는 것으로 알고 18인의 만찬을 준비했으나 막바지에 정상들만 참석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며 “정상회담엔 항상 변수가 있다는 것을 한국의 서울 G20 준비팀이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피디피와인(주)가 츠지조 그룹교와 파트너십을 맺고 개원한 요리 아카데미인 츠지원의 수퍼바이저를 겸임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그를 서울 신사동 츠지원에서 만났다.

● 부 버틀러장은 어떤 자리인가.

“만찬 전 과정의 코디네이터 역할이다. 요리뿐 아니라 테이블 장식, 식기 선택, 서비스 법 등을 각 전문가 집단과 조율한다. 준비단계에서 모든 디테일을 챙기고 구성원을 훈련시키며, 만찬 당일엔 지시를 내리는 현장 감독 역할이다.”

● 만찬 진행 중 에피소드가 있었는가.

“와인, 일본 술, 칵테일 등 각종 주류를 준비했다. 그런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더우니까 시원한 맥주나 한 잔씩 하자’고 갑자기 제안하더라. 하필 맥주만 없었다. 담당자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런데 마침 행사 끝나고 뒤풀이 때 마시려고 스태프들이 냉장고에 맥주를 넣어뒀었다. 스태프들 맥주로 위기를 모면했다.”

● 다른 인상 깊었던 정상은.

“정상들 경호원은 대개 식사 장소엔 들어가지 않는데, 미국 경호원은 빌 클린턴 대통령을 따라 테이블까지 들어왔다. 경호원이 가방에서 다이어트 콜라를 꺼내 건넸더니 클린턴 대통령이 몇 모금 마신 뒤 식사를 시작했다. 클린턴은 식사 전에 다이어트 콜라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 세계적인 지도자라도 다 인간적 면모가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술이 정말 셌다. 도수가 꽤 높은 일본 술을 잔을 셀 수 없을 만큼 마셨는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말수가 매우 적었다.”

● 서울 G20 정상회의 준비 팀에 주는 조언은.

“G20은 참석자 수가 훨씬 많은데, 어려운 과제이지만 모두를 아울러야 한다. 공통된 화제로 분위기를 좋게 만들 테마를 찾는 게 중요하다. 한국 요리의 특징을 보여줄 때에도 참석자들이 모두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발효음식이나 매운 음식같이 기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닭고기로 만든 너비아니를 준비해 쇠고기를 먹지 않는 정상에게 깜짝 감동을 줄 수도 있겠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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