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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두뇌 '脫한국' 위험수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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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하이닉스 반도체에서 메모리 개발의 핵심 역할을 맡은 한 부서에서 연구원 3명이 최근 회사를 그만뒀다. 그 중 두 명은 싱가포르의 경쟁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하이닉스가 기우뚱하면서 이 부서 연구원들의 '탈출'이 이어져 3년여 만에 부서원이 3분의 1로 줄었다.

회사 관계자는 "1999년 유동성 위기가 닥친 이후 지금은 매각한 LCD사업부문 등에서 매년 3백여명의 연구원이 회사를 떠났고 대부분 미국·싱가포르·대만 등지로 간다"며 "회사 특성상 연구인력이 가장 중요한 자산인데 인력과 함께 고급기술정보가 넘어가더라도 손 쓸 길이 없다"고 털어놨다.

고급기술인력의 해외유출이 심각하다. 위기를 겪고 있는 하이닉스뿐만 아니라 건실한 기업에서도 기술인력에 대한 낮은 처우, 연구개발 인프라 부족 등을 이유로 고급인력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심각해지는 기술인력 해외유출=현대경제연구원은 2일 '국내 지식자원의 유출현상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내고 국내의 보상체계 취약 등으로 인해 외국에서 유학한 고급기술인력은 국내로 들어오지 않고 있는 반면 국내 인력의 해외유출은 갈수록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이민 중 취업이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 26.3%에서 지난해 52.4%로 크게 늘었다. 취업이민의 증가가 고급인력의 유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것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박사학위 취득자도 97년 1천5백78명에서 지난해엔 9백58명으로 39%가 줄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한국의 고급기술인력 공급능력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낮은데, 반대로 고급인력 유출은 미국·일본보다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인력공급이 꾸준히 늘더라도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인력유출이 가속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래픽 참조>

보고서는 이러한 고급인력의 공급 부족이 이공계 기피현상 심화, 교육환경 열악, 고용불안 증대, 기술인력 처우 악화 등에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연구원이었던 이수용 박사는 1996년 미국에서 귀국했으나 2000년 7월 미국으로 돌아갔다.

새로 잡은 일자리는 텍사스 A&M대 조교수. 박사는 "KIST에서 당시 받은 연봉이 미국과 큰 차이가 있었고 연구환경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책은 없나=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05년까지 정보통신·생명공학 분야에서만 18만명의 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고급인력의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선 기본적인 인프라 육성조차 힘들다는 게 학계·산업계의 한결같은 걱정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신광철 연구위원은 "국내외의 고급 과학기술 인력의 국내 유치를 위해 두뇌 유출 억제 프로그램을 실시한 아일랜드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도 우리와 같이 해외유학을 간 고급인력들이 현지에서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막기 위해 아일랜드 정부는 2000년 과학재단을 설립하고 정보통신·생명공학의 10개 연구실에 연구비 등을 집중투자함으로써 고급인력의 국내유치에 성공했다.

또 박사학위 취득자에 대한 개별적 통계 조사와 해외 과학·기술자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미국처럼 국내외의 지식자원을 관리하고 해외 인력을 유치할 수 있는 체계적인 프로그램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권혁주·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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