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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손을 써야" "하반기로 늦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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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금리 조정 여부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콜금리를 1.5%포인트 내리면서 저금리정책을 펴오는 동안 경기는 좋아졌지만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부동산 값이 치솟는 등 위험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시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 등 국책연구기관장들이 정부에 금리 조기인상 필요성을 공식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재계와 증시 일각에서는 아직은 금리에 손을 댈 때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과연 금리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의 허찬국(許贊國)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과 금융연구원 정한영(鄭漢永)거시금융팀장이 본지 손병수(孫炳洙)논설위원의 사회로 금리인상의 필요성과 시기·폭 등을 따져봤다.

-최근 경기상황과 올해 전망을 어떻게 보나.

▶정한영 팀장=1분기 산업생산과 소비는 상당히 높은 수치의 증가를 보였지만 설비투자는 여전히 부진했다.경기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잠재성장률 수준을 넘느냐가 중요하다.1분기 성장률은 4%대 중반,2분기에는 5%대 중반으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닐 것으로 본다.그러나 경기회복 속도가 빨라 콜금리가 현행 수준을 유지한다면 하반기에는 성장률이 7%를 넘어 잠재성장률을 상회할 전망이다.

▶허찬국 소장=우리는 연간 성장률은 5.4%로, 하반기에는 6%로 전망하지만 과연 이대로 될지는 아직 장담하기 이르다.지금 성장은 소비와 건설경기를 양 축으로 이뤄지고 있다.소비는 특소세의 한시적 인하에 따른 내구재 소비가 중심이고,건축경기도 용적률 강화 등 각종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조기발주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문제는 이같은 일회성 요인이 하반기 이후 없어진 뒤에도 내수를 주도하는 두 축이 지속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결국 성장의 관건은 수출과 설비투자의 회복이라고 본다.

-미국의 1분기 성장률이 5.8%에 달했는데, 한국의 수출이나 투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許=미국의 성장률이 높긴 하지만 내용은 속빈 강정이다. 성장의 대부분이 재고조정에 의한 것이다. 높은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가가 빠지는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여전히 저조하다. 미국의 1분기 성장률은 우리의 수출 회복과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하반기에 급격한 경기회복을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수출회복 전망이 아직 불투명하다.

▶鄭=미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하지만 미국이 무너지면 세계경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어떻게든 버텨나갈 것으로 본다.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이 상반기에 10%로 회복되고 하반기에는 15%, 잘하면 25%까지도 기대된다. 우리나라의 설비투자는 수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수출이 회복되면 투자는 늘어나게 마련이다. 경기는 한번 탄력이 붙으면 쉽게 꺾이지 않는다. 이런 추세라면 경기는 V자형으로 가파르게 회복될 것이다.

-수출은 회복세라지만 투자는 여전히 부진하다.대통령 선거와 정권 교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기업의 투자심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鄭=선거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최근의 투자부진은 그간의 과잉투자를 해소하는 과정이다. 특히 투자가 집중됐던 정보기술(IT)분야의 경우 감가상각률을 대략 30%선으로 볼 때 이제는 과거의 과잉투자가 해소되고 대체투자에 나설 시점이 됐다.앞으로 미국경제 회복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설비투자는 급격히 회복될 것으로 예상한다.

▶許=투자는 본질적으로 매출과 직결된다.최근의 투자 부진은 미래의 경기상황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는 점이 크다.다만 올해 예정된 선거 역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대시켜 기업들이 조심스런 행보를 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그동안 지속된 저금리정책의 성과와 문제점을 어떻게 평가하나.

▶鄭=우선 저금리정책은 외환위기 극복에 큰 기여를 했다. 2000년 4분기 이후 세계경제의 동시 침체와 9·11 테러의 후유증 속에서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된 것도 저금리정책이었다. 기업의 차입부담을 줄였고 수익성 개선에 큰 힘이 됐다. 반면 시중자금이 단기부동화하면서 부동산으로 옮겨가고 가계부채가 늘어나 자산버블의 가능성을 크게 했다는 점이 문제다.

▶許=지난해 금리인하는 적절한 조치였지만 금리를 더 적극적으로 낮추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만일 그랬다면 지금 금리를 올리는데 따른 부담도 많이 덜었을 것이다. 저금리가 내수 위주의 성장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었다. 금리만으로 경기가 다 조절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주가가 다시 조정을 받고 있고 부동산도 정부의 조치가 먹혀들면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자산버블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나 올해 부동산 과열은 일부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인 만큼 1980년대 일본의 버블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금리 조정이 필요하다면 시기와 폭은 어떻게 보나.

▶鄭=금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결정할 문제지만, 시장에서는 돈이 많이 풀린 만큼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다. 금리조정에는 물가안정 목표와 잠재성장률의 유지라는 두가지 측면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올해 물가 목표 4%를 지키자면 금리를 상당히 올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버블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선제적인 금리인상으로 가계나 시장에 경고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 금리가 싸다고 잔뜩 돈을 빌려서 부동산과 주식 등에 투자했다가 거품이 꺼지면 가계부도가 속출하는 등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은 총재가 이미 금리인상 가능성을 언급한 만큼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오히려 통화신용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할 우려도 있다. 개인적으로 상반기에 0.25%포인트,하반기에 0.5%포인트는 올려야 된다고 본다.

▶許=근본적으로는 지금 금리가 왜 낮은가에 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 금리가 낮은 이유는 시중에 자금수요가 적기 때문이 아닌가. 특히 장기금리가 낮았던 것은 기업의 설비투자 수요가 적다는 얘기다. 시장에 보내는 경고는 한은 총재가 '금리가 오를 것에 대비하라'는 말을 한 것으로 충분한 효과를 거뒀다고 본다. 최근 장기금리의 대표격인 국고채 금리가 꽤 오른 것은 금리인상을 예상한 시장의 반응으로 보인다.

인상폭이나 효과도 따져봐야 한다. 가계대출 금리를 1%포인트 올린다 해서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겠는가. 대출금이 1억원이라면 금리를 1%포인트 올릴 경우 추가부담은 월 10만원에 못미친다. 반면 저축한 돈의 이자도 함께 늘어나는 만큼 금리인상이 가계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금리는 하반기 수출과 설비투자가 확실히 늘어난다는 판단이 섰을 때 필요한 만큼 올려도 늦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6개월 정도 기다려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미국도 여름까지는 금리 인상시기를 정하지 않고 기다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현 시점에선 아직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사회=손병수 논설위원

정리=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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