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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무작정 상경한 유랑민 자녀에 희망 교육'빈민촌 小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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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베이징(北京)시 야윈춘(亞運村) 부근의 아파트촌은 베이징의 자랑이다. 깔끔하게 쭉 뻗은 아파트, 그 앞을 시원스레 가로지르는 대로(大路)는 '선진(先進) 베이징'의 상징이다.

그러나 한걸음만 뒤로 가면 풍경은 완전히 딴판이다. 동네사람조차 이름을 댈 수 없는 거리, 골목마다 쓰레기와 오물이 널려 있다. 흙먼지가 유난히 잦고 짙다.

바로 '민궁'(民工)들이 사는 곳이다. 민궁은 먹고 살 길이 막연해 농촌을 떠나 무작정 도시로 밀려들어온 유랑민들이다. '다궁(打工·노동하다)'에서 '궁(工)'자를 따 만든 신조어다. 그 한 모퉁이 마을 와볜춘(窪邊村)에 '교육소학(育材小學)'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토굴처럼 음습한 교실 9개에서 2백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허난(河南)성과 안후이(安徽)성에서 밀려온 민궁의 아들딸들이다.

판바오우(範保武·31)교장이 교육소학을 세운 것은 1998년. 우연히 민궁들의 삶을 엿본 게 계기가 됐다. 낙엽 같은 민궁 아이들의 삶이 그의 가슴을 쳤다.

결국 그는 가진 재산을 모두 털어 와볜춘에 소학(小學·초등학교)을 열었다. '무작정 출발'이란 점에서 민궁들의 고향 탈출과 닮은꼴이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대도시로 나왔지만 민궁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 교육 문제다. 그래서 학교를 열었지만 학교 설립허가를 받지 못해 정부지원이 없다." 그렇다고 수업료를 걷기도 어려우니 돈이 문제라며 範교장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베이징에 있는 많은 정규학교는 민궁 자녀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정식 호구(戶口·주민등록증)가 없으면 입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소학의 교사는 모두 4명. 전문대와 고교 졸업자가 각각 2명이다. 여기서는 끈으로 묶은 교재를 놓고, 진흙을 이겨 바른 흑판으로 공부를 한다. 교재 값은 3위안(약 5백원)이지만 상당수가 교재비조차 내지 못했다.

학비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한학기 등록금은 3백위안(약 4만8천원). 그러나 한번도 학비를 내지 못한 학생이 태반이다. 그래도 範교장은 독촉 한번 하지 않았다.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날이 어두워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간다. 그 때서야 하루 품을 마친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러오기 때문이다. 부모가 오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불법거주자 불심검문에 걸려 부모가 고향으로 쫓겨간 경우다. 範교장은 이런 아이들의 끼니까지 책임져야 한다.

민궁은 왜 생겨날까. 농촌에서는 먹고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농산물과 비료값에 대한 정부보조금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농산물 시세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 이후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는 추세다. 현재 중국 전역의 민궁은 줄잡아 1억7천만명. 중국 인구의 10분의1이 넘는다.

국무원 민정부와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매년 1천5백만명의 '신규 민궁'이 도시로 밀려나온다. 이들은 매년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1천3백만명의 인력과 일자리를 다퉈야 한다. 도시로 와봐야 먹고살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 아이들이 커서 베이징 시민들과 똑같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나의 꿈"이라고 範교장은 담담하게 말했다. 비탈에 섰어도 아이들의 표정이 밝은 것이 우연은 아닌 듯했다.

와볜춘(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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