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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쪽 가죽공이 만드는'神話'- 本社 이어령 고문 특별 기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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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1면

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이 거대한 지구를 그토록 뜨겁게 달아 오르게 하는가. 그렇다. 축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공허한 소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돼지 오줌보만한 조그만 공 하나를 놓고 다 큰 어른들이 팬츠 바람으로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꼴은 필경 희극 이상의 것으로 비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을 방영하는 TV 중계권으로 2백60억 달러의 돈을 기꺼이 지불했다는 재벌 카르흐사는 미친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축구는 중국에서 족구라고 부르듯이 발로 차는 운동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의 뱃속에서 발길질을 하며 놀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의 문명과 모든 기술은 손으로부터 발생한다.

스포츠 역시 예외가 아닌데도 유독 축구만이 발을 쓴다. 머리 가슴 온 몸을 사용하면서도 손만은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 문명의 상징인 손을 묶어두는 축구는 문자 그대로 속수무책(束手無策)의 탈 문명적 특성을 갖는다. 영국 같은 신사의 나라에 야만적인 훌리건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그 축구였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쉽고 단순하고 우연성이 많은 그 축구의 야성적인 역동성이야말로 문명화된 사회, 규격화된 생활에 숨구멍을 터놓는 환풍구가 된다. 날로 높아가는 축구의 매력과 열기를 뒤집어보면 인류 전체가 산업문명 속에서 얼마나 시달려 왔는지를 알게 된다.

이렇게 축구를 문명의 텍스트로 읽게 되면 월드컵 사상 최초로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하는 이번 월드컵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한·일 두 나라의 국민들은 그 동안 개화문명의 슬로건을 내걸고 잠시도 쉬지 않고 서구의 국가들을 숨가쁘게 뒤쫓아왔다. 하지만 이제 '손을 놓고' 저 모태의 아늑한 원초적 생명 공간 속에서 발길질하며 놀던 때를 기억해 봐야 할 시점을 맞게 된 것이다.

쉽게 말해 월드컵을 통해서 국민 모두가 문명의 스트레스를 풀고 그 오염된 허파를 원초의 바람으로 씻어내는 심호흡을 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월드컵 기간을 통해서 문명의 질곡에서 벗어나 축구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개최국 국민으로서의 책무다.

우리가 벌이는 축구판이 일상적인 반복과 기계적인 틀 속에서 벗어난 카니발과도 같은 큰 축제가 되려면 모든 행사, 모든 경기가 즐겁고 재미있고 활력 있게 전개돼야 한다.

그래서 그 카니발적 혼돈이 세계가 원시로 회귀해 풍요와 생산의 에너지로 충만하게 하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인류학적으로 봐도 축구는 인간의 원형에 속하는 게임이다. 여러 기원 설이 있지만 오늘날 같은 축구의 원형은 12세기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럽 대륙의 '스루'라는 경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스루는 켈트어로 태양을 뜻한다.

그러니까 사순절의 봄 축제와 관련된 것으로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여 태양을 상징하는 공을 빼앗는 시합을 한다. 태양을 자기 마을로 가져와 풍년을 들게 하는 일종의 풍요제였던 것이다. 오늘날의 월드컵도 그러한 풍요제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월드컵이 국경 없는 시대의 지구촌 축제가 될수록 마을 단위의 공동체 의식과 그 번영을 기원하는 풍요제적 성격은 더욱 높아진다. 지난 월드컵의 개최국이요 우승국이었던 프랑스를 모델로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프랑스 팀 최대의 골게터 지단은 알제리계요, 조르카에프는 아르메니아계, 그리고 데샹은 스페인계다. 스타팅 멤버 11명 가운데 7~8명이 이민계의 선수들로 되어 있다. 그래서 프랑스 응원단의 자리에서 나부끼는 것은 프랑스 깃발만이 아니라 알제리나 모로코 같은 여러 나라의 국기도 한몫 끼여 있다. 월드컵은 민족 공동체의 일체감을 새롭게 인식하고 강화하는 이벤트이면서도 동시에 세계화가 아니면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글로벌리즘의 이벤트이기도 한 것이다.

영국 언론인 그레익 맥길의 『사커 주식회사』라는 책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축구는 이미 국제적인 비즈니스로서 매력 있는 투자 대상이요 냉철한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거대한 산업이다.

구단주는 물론이고 그와 관련된 여러 이익집단 그리고 국가까지 총동원되는 태양 빼앗기의 시장경쟁이 제례(스포츠)의 이름으로 치러지고 있다. 그리고 옌센의 증언대로 모든 비용이 선불되어야 하는 할리우드와는 달리 축구 클럽과 축구 리그는 독점권을 갖고 있다.

월드컵은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유럽의 여러 축구클럽의 주식이 향후 10년 동안 우량주로 남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클럽들은 고유 로고가 찍힌 티셔츠 판매, 특히 TV 중계권과 후원계약을 통해 부유해질 것이다. 선수들, 특히 스타들은 성공담과 경쟁담, 역경을 극복한 이야기를 통해 부유해질 것이다. 21세기에는 25세도 안되는 많은 백만장자가 배출될 것이다. 옌센은 이렇게 월드컵을 21세기를 대표하는 꿈의 산업이라고 말한다.

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이런 문화 산업에 익숙해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공동변소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 조직위가 내분을 겪고 있을 때 참가국들은 물론이고 일본은 벌써 휘장 사업으로 큰돈을 손에 쥐고 있다.

개최지가 아닌 도시에서도 참가국의 베이스 캠프 유치 등으로 수익을 노린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월드컵은 스칼퍼라고 불리는 암표장사들의 황금어장이다.

지난 프랑스대회에서는 준결승전이 1만8천프랑, 결승전은 2만프랑으로 정액의 10배가 넘는 암표가 나돌았다. 우리 돈으로 치면 3백60만원 가까운 돈으로 거래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월드컵이 지니고 있는 풍요제의 내막이다.

우리는 명분만의 월드컵 개최국이 되어서는 안된다. 개최도시를 비롯해 최소한 햇볕을 자기 마을로 끌어들이는 명실 상부한 풍요제가 되도록 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상업주의에 오염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이중 구속의 어려움을 풀어가야 한다. 세계성과 지역성 공동체의 결속과 상업주의 -이러한 모순과 혼동과 속임수가 함께 어우러지고 뒤범벅이 된 가운데서 미래의 문화 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이 월드컵의 모험이다. 바로 그러한 모델 속에 21세기의 과제들이 숨쉬고 있다.

깨끗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게임은 더 이상 게임으로 끝나지 않는다. 축구가 그냥 축구였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축구는 전쟁이나 혁명을 일으키고 마피아와 독재자를 매료시키기도 한다"라는 사이몬 쿠퍼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장미꽃 밭에 독사가 있듯이 화려한 축구의 그라운드에도 적들이 도사리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대서양 양 기슭을 오가며 치러졌던 월드컵은 깨끗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스캔들로 얼룩진 이야기도 많다. 대서양에서 아시아의 동쪽으로 처음 옮겨온 월드컵의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

더구나 그것은 우리 혼자가 아니라 악연으로 맺어온 이웃 일본과 함께 만들어가야 할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역사를 더듬으며 한국이 옛날 일본의 식민지였음을 새삼스럽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자연히 두 나라를 비교해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월드컵은 스포츠 경기이면서도 문화의 경기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 4백억명으로 추산되는 관객들이 바라보는 그 드라마 속에서 보여줄 우리의 이야기는 분명하고 단순 명료한 것이다.

9·11 테러로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상생의 21세기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다. 지난 프랑스 월드컵 때 정치적으로 숙적관계에 있었던 이란과 미국의 대전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축구의 열기와 경쟁을 국민감정이나 정치에 이용하려고 한 사람들은 참패를 당했지만 그 대신 양국기로 하트 모양을 새긴 셔츠를 입고 화해와 평화를 나누려고 했던 사람들은 박수를 받았다. 정치와 축구는 다르다는 휴먼드라마를 보여줘야 한다.

문화 문명은 충돌하는 것이라는 9·11 서구발신으로 시작된 21세기를 문화 문명은 융합하고 상생하는 것이라는 아시아의 월드컵 발신으로 반전시키는 이야기이다.

한국인이 남의 나라 식민지 백성을 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비록 원수처럼 살아왔던 일본이라고 해도 우리는 결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오히려 과거의 먼지를 털고 두 나라가 처음으로 손을 함께 잡고 인류에게 공헌하는 월드컵의 새로운 이야기를 함께 써나가는 21세기의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

월드컵이 끝날 때 더 이상 한국과 일본은 서양의 수신자가 아니라 발신자임을 그리고 독백이 아니라 그들의 좋은 대화자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이것이 한달 후 열리는 32쪽의 검고 흰 가죽으로 기워 만든 둥근 공이 만들어나갈 이야기이다. 32쪽이 아니라 2백4개의 까맣고 하얀 나라를 서로 이어서 만든 둥근 지구 공동체의 행복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드디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2백4개국, 연 인원 4백억 이상이 열광하는 지구 최대의 드라마가 바로 이 한국 땅에서 벌어지게 된다. 흰색 육각형 사이에 검은색 오각형이 박혀 있는 32개의 그 조그만 얼룩무늬 가죽조각들이 이제 한달 동안 상상을 초월한 뜨겁고 짜릿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롤프 옌센의 말대로 대부분의 상품들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지만 그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에는 그 어떤 문화나 국가적 장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화라는 말은 이미 구호가 아니라 생생한 일상의 체험으로 우리에게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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