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최제창 前 재미 한인의사회장 -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 부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3면

서울 정동에서 덕수궁 돌담길 모퉁이를 돌아가면 주한 미국 대사의 관저가 나온다. 전통 한옥의 아취와 기품을 간직한 관저에 들어서면 도심 한복판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고즈넉한 분위기가 흐른다. 그래서인지 한국을 찾는 미국 요인은 종종 대사관저를 숙소로 사용하곤 한다. 지난 2월 방한한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이곳에서 이틀밤을 보냈다.

이 관저에 또다른 귀빈이 지난 19일부터 머무르고 있다. 토머스 허 버드 대사가 그를 모시는 태도는 더할 나위 없이 깍듯하다. 어김없이 5시에 퇴근해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행여 불편한 곳이 없는지 보살피느라 지극 정성이다. 지난 주말엔 부인 조앤 여사와 함께 손님을 모시고 경주에까지 다녀왔다.

이쯤되면 본국에서 고관대작이 출장을 왔으려니 짐작하기 쉬울 터. 하지만 그 손님은 실은 96세의 재미동포 최제창(崔濟昌)박사다. 두 사람 모두 친아버지를 여읜 대사부부에게 40년의 인연을 켜켜이 쌓은 최박사는 실로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최제창 박사. 일제 치하인 1927년 일본 요코하마(橫浜)항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의 배삯 1백20달러를 치르고 남은 50달러만 갖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고학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미 군정시절 보건 후생부 차관과 워싱턴지역 한인회장, 재미 한인의사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올해로 1백년을 맞는 한인동포 미국 이민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대사 부부 가운데 먼저 최박사와 인연을 맺은 사람은 조앤 여사다. 대학시절 조앤의 4년 단짝이 다름아닌 최박사의 딸 화자(和子·59)씨였던 것이다. 방학이면 딸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우정을 쌓은 조앤을 최박사는 친딸처럼 아꼈다.

그러다 조앤이 외교관 초년병이던 허버드 대사와 결혼하게 됐다. 최박사는 "사위 한 사람 더 얻은 셈"이라며 즐거워했고 허버드 대사도 최박사를 따르고 존경했다. 최박사는 수시로 허버드 부부를 집으로 초대했고 주말이면 함께 골프를 즐겼다. ('골프박사' 최박사는 96세의 고령에도 18홀 골프를 거뜬히 해낸다. 89세 때 89타를 기록한 '에이지슈터(Ageshooter)'이기도 하다. 자신의 나이만큼 타수를 기록하는 게 골프광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꿈의 목표다.) 허버드가 지난해 한국 대사 발령소식을 접한 것도 최박사 일가족과 함께 보스턴 해변에 휴가를 가 있던 중이었다.

허버드 대사가 얼마나 각별히 최박사를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국무부 부차관보 시절 허버드 대사는 북한과의 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그때 자동차로 육로를 달리면서 개성을 지나게 됐다.

"아, 저곳이 닥터 최의 고향이구나. 함께 올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허버드 대사가 워싱턴에 돌아온 뒤 그런 사실을 전하는 바람에 개성 출신의 실향민 최박사는 몇번이나 눈물을 머금었다고 한다.

최박사와 허버드 대사의 인연을 연결해주는 또 다른 매개체가 있다. 대사관저의 뜰에 있는 영빈관이 그것이다. 이 건물은 1883년 미국이 한국땅에 처음으로 개설한 공사관 건물을 수리한 것이다.

영빈관 앞 뜰을 거닐던 최박사는 어느새 약관의 청년으로 되돌아간다. 만 스무살 청년,그것도 세계사의 흐름에서 한참 밀려나 있던 식민지 청년이 미국 비자를 받았던 바로 그 건물이기 때문이다.

"꿈을 꾸었던 거죠. 미국이란 나라에 가면 나처럼 돈 없는 사람도 공부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말만 믿고 유학을 결심했지요. 영어 시험을 보고나서 비자를 받아들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 여기서 유학 비자를 받은 한국 사람은 한 해 열명이나 됐을까요."

오로지 패기와 젊음을 담보로 자신의 미래를 걸었던 공사관 건물. 7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아들과 다름없는 허버드 대사가 그 건물의 주인이 돼 살고 있다.

미국 대사관측이 당시의 사료들을 모아 기념관으로 꾸며 놓은 이 영빈관을 보면서 최박사는 또다른 꿈을 갖게 된다고 한다. 다름아닌 미국 땅 워싱턴에 있는 한국의 옛 공사관을 매입하는 일이다. 1891년 조선왕조가 2만5천달러에 사들여 공사관으로 쓰다가 한일합방과 함께 단돈 5달러에 일본에 넘긴 비운의 건물이다. 지금은 미국인의 손에 넘어가 민가로 쓰이고 있다.

"우리도 옛 공사관을 사들여 문화재로 보존해야지요. 워싱턴 한인회가 조사한 바로는 매입비용으로 60만달러(약7억8천만원)가 듭니다. 한국인이 국제사회에서 첫 걸음을 내디딘 장소인 공사관을 사들여 한민족의 해외진출사를 보여 주는 박물관으로 꾸미는 것이야말로 한국 정부와 한국민들의 의무가 아닐까요."

워싱턴 공사관 매입을 생애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한다는 최박사의 목소리엔 혈혈 단신 유학을 떠나던 시절의 굳은 각오와 같은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예영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