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세대 간 경제적 갈등의 쓰나미가 오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인구 고령화가 우리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세대갈등에 대한 부분은 비교적 논의가 부족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주된 갈등 요인은 지역과 이념이었다. 그러나 향후 인구의 국가 간 이동이 증가하고, 지역 간 이동 또한 많아지면서 지역갈등 문제는 서서히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한국 사회의 가치가 다원화되고 성숙도가 깊어지면서 이념갈등의 진폭과 광폭도 점진적으로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세대갈등은 인구 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함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인구 구조의 변화로 인한 세대갈등의 본질은 풀기가 쉽지 않은 경제적 이해관계이기 때문이다.

갈등의 양상은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백 개의 회사에 입사원서를 쓰고 있는데, 이미 안정된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중년들은 오랫동안 그 자리를 점유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정년 연장을 도모하고 있다. 그린벨트는 후대에게 물려줄 귀중한 환경자산이었지만, 지금은 현세대의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해 아파트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국가부채다. 국가부채는 본질적으로 미래 세대가 쓸 자원을 오늘의 세대가 미리 써버리는 행위다. 국가부채에 관한 한 오늘의 청년세대는 매우 불행한 세대다. 형식적으로 볼 때 미래 세대는 현재 세대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다. 그러나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채권의 만기가 오면 자신들의 세금으로 그 채무를 갚아야 한다. 자기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다시 자기가 갚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는 말이다.

향후 시간이 갈수록 선거는 세대 간 경제적 이해 갈등의 결정판이 될 것이다. 투표율이 높은 노인계층이 늘어나면서 선거 출마자들은 저마다 노인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발 빠른 후보자들은 노인 연금액을 올리고, 건강관련 지출에 대한 보조금을 늘리겠다는 공약을 앞다투어 내놓게 될 것이다. 노인들께 틀니도 무료로 해 드리고 임플란트도 무료로 해 드리겠다는 공약이 다반사로 나올 것이다. 물론 이때 필요한 노인복지비용은 노인 스스로가 아니라 청년층이 부담하게 될 것이다. 낸 돈보다 훨씬 더 많이 받게 되어 있는 현재의 국민연금도 결국 미래 세대가 채워 나가야 할 부분이다. 현재 청년층이 수혜자가 되는 시점에는 자신들이 낸 돈조차 받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세대 간 경제적 이해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더욱 첨예하게 확대될 것이다. 현재의 중년층들은 60대에 은퇴하는 경우 평균적으로 20∼30년은 더 살아야만 하지만 여기에 필요한 노후소득은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왜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느냐고 탓할 수만은 없다. 이들은 고도성장과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성공을 생각하기는커녕 생존의 무게에 허덕이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향후 경제성장률이 저하되고 괜찮은 일자리의 증가 속도가 둔화되면서 청년층도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다. 소득증가율이 미미한 상태에서 소득세와 복지세가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청년층의 인내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서서히 한계점에 도달할 것이다.

세대 간 경제적 갈등이 본격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하는 상황이 됐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면 결코 이 문제는 풀릴 수 없다. 지금은 인구 감소의 문제 자체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세대 간 갈등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시기다. 당면한 세대 간 일자리 갈등에서부터 머지않은 시기에 다가올 연금 갈등, 그리고 노인복지 갈등에 대한 근본적이고 합리적인 대안 모색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청년층과 노인층의 경제적 갈등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전개된다면 이는 청년층과 노인층, 그리고 아무 죄 없는 우리 아이들까지 나락으로 추락하게 만들고 말 것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