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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는 아나운서 유 정 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프리랜서 아나운서 유정현. 그의 어머니는 성악가였다. 어머니는 잠을 깨울 때 피아노에 맞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어린 그에게 성악은 꿈에서 현실로 나오게 하는 고행의 통로였다. 그러나 콩 심은 데서 콩 나는 법. 고교 졸업을 앞두고 그는 궁리 끝에 성악을 전공으로 택했다.

수업은 엄격했다. "성악가는 체조 선수와 같다. 매일 연습하지 않으면 금세 퇴보한다"고 교수는 강조했다. 자신이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아나운서 시험을 보았지만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호텔 부설 공연홀의 쇼PD와 교통방송 수습기자 생활을 거쳐 드디어 1993년 11월에 SBS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시키는 대로 다 했지만 고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많게는 일곱개의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어느 선배가 "넌 자존심도 없냐"고 질책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프로그램 가리는 건 그의 성격상 안 맞는 일이었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즐겁게 했고 그것에 감사했다.

그의 낙천적 성격과 희멀건 얼굴이 어느날 드라마 작가의 눈에 띄었다. 1996년 그는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로는 드물게 드라마('부자유친')의 고정 배역을 제의받는다. 파격이었다.

하기로 했다. 재미의 유무가 선택의 잣대였기 때문이다. "연기가 그게 뭐냐" "옷이 뭐 그러냐" "아나운서 맞느냐" 등도 그에겐 유쾌한 반응이었다. "연기는 어디까지나 외도죠. 정도(正道)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니 고맙고요."

PD들은 함께 일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그가 여기저기 잘 '팔리는' 건 예견된 일이다. 오라는 데 많고, 갈 수 있는 데 다 가다 보니 개인 성찰의 시간이 부족했다. 무리수를 둔다고 스스로 느꼈을 때 누군가 그에게 프리랜서를 권했다. 한 달 넘게 고민했다. 무엇보다 그의 부친이 반대했다.

'자유선언'이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돈에 대한 그의 생각은 특별하다. 그는 지갑 속에 남들보다 돈을 조금 많이 넣고 다니는 편이다. 먹고 싶을 때 사먹기 위해서라는 게 순박한 그의 대답이다. "돈을 어디에 쌓아두고 싶은 욕망은 솔직히 없습니다." 하기야 돈은 거름과 같아서 쌓아두면 냄새나 풍길 뿐이다.

유정현을 유들유들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그것을 안다. 우선 말이 유장하다. 속도전의 세상에서 그건 단점이 아닐까. 목소리도 낮은 편이다(성악 공부할 때 파트가 베이스-바리톤이었다.) 표정도 느긋하다. 방송에서 사고를 쳐도 크게 실수한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장점이 그에게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제 눈이 쌍꺼풀이거든요. MC계의 장동건이라는 거 아닙니까."

느끼한 사람이 스스로 느끼하다고 말할 때 그건 이미 느끼함이 아니다. 그가 오버하는 것일까. 그게 오버라면 그것이야말로 '크로스 오버'(장르 넘나들기)인 듯하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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