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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도국 전설 따라 600년 시간여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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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신이 임금을 받들어 모시려 해도 천한 하녀의 소생이어서 학문이나 무술로 출세를 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천하를 떠돌아 다니며 관가의 재물을 턴 것은 임금께 저를 알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제 저의 소원을 들어주셨으니 하직하고 조선땅을 떠나려 합니다.' -소설 『홍길동전』 경판본-

조선시대 가장 큰 병폐 중 하나였던 서얼(庶孼·첩의 자식)차별을 거부하며 활빈당(活貧黨)을 조직해 탐관오리의 횡포를 벌하고 나중에는 이상향(理想鄕)인 '율도국'을 건설했다는 홍길동.

『홍길동전』은 교산 허균(1569~1618)이 광해군 4년(1612)에 쓴 최초의 한글소설이다. 『홍길동전』의 주인공이 실존 인물이라는 주장은 1960년대 말 국문학계에서 처음 제기됐지만 이제는 정설로 굳어져 있다.

조선시대 서얼 차별은 '왕자의 난(1398)'을 통해 정권을 잡은 이방원(태종)으로부터 시작됐다. 세자 책봉에서 밀려난 방원은 세자 방석과 그의 후견인이며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서얼 출신이었던 정도전을 살해하고 권력을 잡았다. 왕위에 오른 태종은 서자를 중인으로 강등시켜 출세에 제약을 가하는 서얼 차별을 실시했다. 그리고 성종 원년(1470)에 이르러 서얼 출신의 사회 진출을 제도적으로 막는 법이 제정됐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홍길동은 1443년 홍상직(洪尙直)과 옥영향(玉英香) 사이에 아치실(전남 장성군 황룡면 아곡1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첩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출세 길이 막히면서 좌절과 울분 속에 집을 떠나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실천적 삶을 살았으며 율도국을 건설했다는 이야기가 '홍길동전'의 줄거리다.

허균은 인간의 평등사상을 역설했던 개혁적 인물. 광해군 2년 이항복·이덕형 등과 함께 과거시험 감독관에 임명됐으나 시험 부정사건에 휘말려 혼자 책임을 지고 전라도지방으로 3년간 귀양을 떠났다. 그곳에서 홍길동의 무용담을 듣고 소설을 집필하게 됐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홍길동의 저자가 허균이 아니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국문학과 설상경교수는 『조선왕조실록』·『증보해동이적』(조선시대 야담집)·『택당집』·남양 홍씨의 족보·홍길동의 아치실 출생 전설 등을 통해 "홍길동은 실존 인물이고 소설은 교산 허균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홍길동이 건설한 '율도국'은 일본의 오키나와"라고 말한다.

한편 군웅할거 시대였던 5백년 전 일본의 오키나와에는 민중의 제왕으로 추앙받았던 '오야케 아카하치(赤蜂) 홍가와라(洪家玉)'가 있었다. 그는 유구국 상진왕에 반기를 들었다가 정벌군에 패했다. 1953년 오키나와 주민들은 홍가와라 추모비를 건립했고 2000년에는 홍가와라를 추모하는 5백주년 축제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율도국과 오키나와에 대한 연관설은 한·일 양국 학자들 사이에 추모비 비문에 쓰인 내용에 이견을 보이고 있어 아직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홍길동 생가터는 지난해 5월 발굴됐다. 장성군은 이곳에 15억원의 자금을 투자해 오는 9월까지 생가를 복원하고 연말까지 식당·휴게소 등을 갖출 계획이다.

장성군은 홍길동의 진취적인 사상을 기리기 위해 다음달 3~5일 장성문화센터와 홍길동 생가터에서 홍길동축제를 개최한다. 홍길동 추모제를 비롯해 마당극 홍길동전·무예극 의적 홍길동·기원무·영화상영 등의 행사가 마련돼 있다. 또한 관광객이 참여할 수 있는 퍼즐맞추기·짚풀공예 체험교실 등도 운영하며 게임과 퀴즈로 뽑는 어린이·소년·청년 홍길동 선발대회도 열린다. 장성군청 홈페이지(www.changsung.chon nam.kr·061-390-7224)를 통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장성군은 홍길동 캐릭터도 만들어 관광상품 등에 활용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서해안고속도로 고창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지방도로 898호선을 따라 20여분을 달리면 장성읍에 도착한다.

장성=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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