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간부들 “전임자 축하금 받아내라” 강의 집단수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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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23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조합원 2500여 명(경찰 추산)이 참여한 집회를 열었다. 다음 달 1일 시행되는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 제도에 반대하는 투쟁 출정식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노조전임자는 회사로부터 급여를 못 받는다. 대신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지난달 1일 정한 수준으로 전임자를 줄여야 하고, 이들에게만 일하지 않아도 일한 것으로 간주해 임금이 지급된다. 기존 노조전임자 가운데 상당수가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타임오프는 노조를 말살하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29일 타임오프제 폐기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다시 연다.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 시행 일주일을 앞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 노동자 대회가 열렸다. 보신각 인근 도로를 에워싼 채 경찰 2000여 명이 시위대의 도로 점거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산업현장에선 타임오프제를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노조는 힘으로 밀어붙여 전임자를 보장받으려 하고, 기업은 노조와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 노동부는 “법에 어긋나는 노사의 행동은 예외 없이 처벌하겠다”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은 상황을 따져 결정한다”는 애매한 입장이다. 노사정 입장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편법이 동원되고 대립도 격화되고 있다.

◆편법에 탈법까지=K의료원 노사는 최근 ‘단협에 보장된 노조 활동과 상급단체 파견자는 타임오프와 별도로 보장하고, 전임자와 동등하게 대우한다’고 합의했다. 외국계 회사인 N사는 ‘전임 기간의 임금은 전임 전 임금에다 전임수당(15만원), 시간외 근무수당을 지급하고 조합 업무를 하는 직원 1명을 노조에 배치한다’는 등의 내용에 노사가 합의했다. 금속노조 자문 변호사를 지낸 모 변호사는 10일 노조 간부 60여 명에게 타임오프 관련 설명회를 직접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단체협약 체결 시점을 노조법이 개정되기 전인 2010년 1월 1일 이전에 체결한 것으로 작성하라’ ‘급여 대신 전임 취임 축하금, 정치활동, 복귀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받으라’라는 대응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하나같이 법에 어긋나거나 편법”이라고 말했다. 인하대 김대환(전 노동부 장관) 교수는 “편법이 방치되면 전임자 무임금제도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눈치 보게 만든 정부 지침=금융노사는 최근 전임자와 상급단체 파견자 대우 등은 ‘노동부의 의견을 물어 결정한다’고 했다. 사측 관계자는 “노동부 매뉴얼에 애매한 부분이 많아 두부 자르듯 적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D그룹 관계자도 “노사 관계가 대립적인 계열사는 원칙대로 하려 하고, 파트너십이 형성된 곳은 노조를 배려하려 한다”며 “그런데 노동부 매뉴얼은 원론적인 수준이어서 그룹 통합지침을 마련하기 난감하다”고 했다.

정부 정책에 호응했던 현대중공업 노조도 19일 소식지에 “노동부가 구체적인 세부 내용을 정립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노조가 대처하라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총 황인철 홍보기획본부장은 “이른 시일 안에 현장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행정 처리지침이 나와야 혼란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기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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