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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톱의 사회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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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포켓몬스터''슈퍼마리오''게임보이'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세계적인 게임 메이커 닌텐도(任天堂)의 회사이름 중 '임천(任天)'은 '하늘에 맡긴다'는 뜻이다. "인생은 암흑 같아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앞날의 운명은 하늘에 맡기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자"는 창업주의 인생철학에서 나왔다. 올해로 창업 1백13년. 메이지(明治)시대 출범 당시의 주력제품은 화투(하나후다)와 트럼프였다. 닌텐도는 1960년대에 완구용품 제조로 변신을 시도했으며, 80년대 들어 '패미콤' 등 가정용 게임기와 소프트웨어들을 잇따라 히트시켜 전세계 어린이의 사랑을 받는 초우량기업이 됐다.

화투는 원래 포르투갈 상인이 즐기던 '카르타'라는 카드놀이가 일본에서 하나후다(花札)로 변형됐고, 이것이 조선조 말 우리 땅에 흘러들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화투망국론이 나올 정도로 크고 작은 폐단도 많지만 명절 때마다 화투판이 벌어지지 않는 집이 드물고, 요새는 인터넷 화투까지 인기를 끄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선 화투를 칠 줄 아는 젊은이가 거의 없다.

화투게임의 패자(覇者)는 아무래도 고스톱. '설사''독박'따위를 전혀 겁내지 않는 한국인의 '벤처정신'과 잘 어울리기 때문일까. 게다가 우리는 정치상황에 맞춰 규칙을 자유자재로 바꿈으로써 종종 화투판을 풍자와 비판의 장(場)으로 활용해왔다.

서슬퍼렇던 5공화국 시절, 싹쓸이했을 때 남의 패를 아무 것이나 가져올 수 있는 '전두환 고스톱', 싹쓸이하면 오히려 자기 패를 빼앗기는 '최규하 고스톱'이 유행했다. '고'를 했다가 '바가지'를 쓰더라도 취소하면 없던 일로 되는 'DJ 고스톱'도 잠깐 선을 보였다.

최근 들어서는 '홍(弘)3 고스톱'이 유행한다고 한다(본지 4월 18일자 27면). 홍단 패를 가진 사람이 판돈을 싹쓸이하는 방식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이 이런저런 일에 자꾸 거론되는 것을 풍자했다는 것이다. 홍단으로 이기면 그 뒤 세판까지는 져도 돈을 내지 않는다니 대단히 위력적(?)이다.

하긴, 그래도 어림없다. 서민들이 명절 고스톱 판에서 아무리 수십차례 대박을 터뜨린들 金대통령의 3남 홍걸씨가 'LA거주 외가친척'에게서 빌려 이신범 전 의원에게 주었다는 10만달러(약 1억3천만원)의 근처에도 미치지 못할테니까.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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