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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가르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9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나는 서슴없이 자식을 위해 산다고 답할 것이다. 무슨 전근대적인 발상이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이는 철저하게 생물학적인 답변이다. 생물이란 번식을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들의 삶의 목표는 자식일 수밖에 없다. 자식의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우리의 행동에는 그럴 만한 생물학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부모의 심정도 생물학적으론 황당한 현상이 아니다. 다만 보다 큰 만족을 얻으려면 현명한 부모가 될 필요가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자식 눈치를 보느라 가르침을 포기한 부모들이 있다. 그런 부모들은 자식을 자유롭게 기르는 것이라는 궤변을 펼치지만 내 눈에는 부모로서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에게 폐 끼치는 아이를 내버려두면서 그 아이가 자신의 유전자를 원활하게 퍼뜨려줄 것으로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어쩌다보니 현대사회의 교육이 남을 꺾기 위한 경쟁수단이 됐지만 원래 교육은 함께 사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이 사회에 진입하려는 새내기들에게 최소한의 규범을 가르치는 과정이 중요한 부분이었다.

교육은 다분히 일방적인 것이다. 먼저 산 세대가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왜 학교가 싫으냐고 물으면 평생 써먹지도 못할 걸 가르친다고 대답한다.

동물사회에도 교육제도가 있을까 의아해 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겨우 깃털을 가다듬은 새끼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 어미새만 보더라도 동물세계도 교육과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먹이를 먹는 법 등을 악착같이 가르친다.

인간은 동물 중 유일하게 말로 상대를 가르친다. 그러나 나는 인간도 말로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동물처럼 몸으로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사이 열세 살 된 우리 아들과 매일 밤 승강이를 한다. 조금만 더 읽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아이를 꾸짖고 불을 끄느라 행복한 다툼을 벌인다.

아내와 나는 그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깨어 있는 동안에는 거의 쉼 없이 번갈아 책을 읽어주었다. 어느 날인가 책을 읽어주다 잠이 들자 그 아이가 대신 우리에게 읽어주기 시작할 때까지 매일 밤 침대에 함께 누워 적어도 대여섯 권의 책을 읽었다. 부모가 늘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 아이들도 저절로 책을 읽는다. 자기는 읽지 않으면서 아이보고만 읽으라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동물처럼 몸으로 가르치는 지혜를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평생 자식을 대하는 태도가 태교의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뱃속에 들어 있는 아기에게 부모들은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바란다. 그것이 바로 내 유전자를 보다 많이 후세에 퍼뜨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랑만큼 값진 교육은 없다. 사랑이 굶주린 아이는 늘 사랑을 얻기 위해 눈치를 보며 비굴해진다. 사랑을 넘치도록 받은 아이는 늘 당당하고, 넘쳐나는 사랑을 남에게 주지 못해 안달한다.

지나치게 머리로 계산한 사랑보다는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다분히 동물적인 사랑이 더 강력하고 효과적이다. 동물적 사랑이란 단순히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다. 끊임없이 인내하고 아낌없이 주며 때가 되면 미련없이 보낼 줄 아는 그런 사랑이다. 내가 보아온 동물 부모들은 우리보다 배운 건 많지 않아도 이런 사랑을 베푸는 데 모자람이 없다.

5월은 가정의 달. 한국청소년상담원(원장 이혜성)과 중앙일보는 부모들이 올바른 자녀교육을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각계 인사들이 자녀교육 체험을 직접 들려주는 부모대학을 5월 7일부터 6월 11일까지 서울 중구 청소년수련관에서 엽니다. 또 5월 중 강연 내용을 담은 단행본을 발간합니다. 다음 글은 이 책에 실릴 내용 중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의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상담원은 02-2253-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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