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문화 발전기 100만볼트 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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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복수는 나의 것'의 신하균, '재밌는 영화'의 임원희, '피도 눈물도 없이'의 정재영, 그리고 드라마 '화려한 시절'의 류승범.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속칭 요즘 크게 '뜬' 실력파 배우들이다. 이들을 묶어주는 테두리는 문화창작집단 '필름 있수다'. 공연 기획집단 '수다'에서 출발해 최근 충무로를 뒤흔들고 있는 이들의 매력을 모임의 좌장격인 장진 감독이 들려준다.

편집자

수다의 의미는 여러 가지다. 어떤 이는 수다 떤다 할 때 수다라고 하고, 또 빼어남이 많은 곳이라 해서 수다라고 하는 이도 있다. 또 누군가는 많은 목숨이 달렸다 해서 수다라고도 한다.

수다는 태생 자체가 유희정신으로 뭉친 노는 집단이다. 만나서 놀아 보고, 얘기해 보고, 저질러 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린 그것이 21세기의 진보된 문화 콘텐츠라고 굳게 믿는다. 우린 매체의 이격된 사이를 좁히고 매체 통합, 자유로운 크로스 오버를 생산해낸다.

우린 다분히 문화 발명가의 심정으로 이곳에 머문다. 공연·영화·방송·음악·연기·작가·출판 등등. 그래서 수다 안에서 꿈을 키워가는 이들은 전천후 예술인의 기질을 본능적으로 터득해간다.

배우 역시 그렇다. 주로 서울예전 선·후배들로 뭉쳤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과 연기에 관한 사고는 수다의 정신과 같이 간다. 다음달 하순 개봉 예정인 단편 영화 프로젝트 '묻지마 패밀리'에서 이들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것도 단편영화의 상업화란 새로운 명제에 도전하는 것이자 각기 다른 성향의 이들을 아우르는 작은 통합으로 볼 수 있다.

신하균을 처음 만난 건 1993년 겨울이다. 학교 동아리방에서 제임스 딘을 좋아해 머리부터 표정까지 그를 닮으려 노력 중인 '제임스 딘' 신하균을 대면했다. 보자마자 웃음부터 나왔다. 생각해 보라, 갓 스물의 신하균이 머리에 무스를 뭉쳐 발라 10㎝ 높이로 넘기고, 꽉끼는 청바지에 인상 쓰며 서 있는 폼을! '폭탄 투하 중' 이란 첫 연극을 하면서 신하균이 가진 음색과 진지함에 매력을 느꼈다.

임원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판 깔아줄 때 미치는 배우다. 보통 땐 고시원에서 며칠 박혀있다가 나온 몰골에 가훈이 '정숙'인 집에서 자란 사람처럼 말수 없고 조용하지만, 무대가 됐건 카메라가 됐건 누가 "시작"이란 말만 외치면 그만의 광기를 아낌없이 배출한다.

우리 또래 중 가장 넓은 연기폭을 가진 배우를 꼽으라고 하면 늘 정재영을 생각한다. 물론 임원희가 없을 때 말이다. 정재영은 한호흡 안에서 우스꽝스러운 코믹부터 소름끼치는 진지함까지 수시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넓은 옥타브를 지녔다.

류승범은 가장 어리지만 절대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불현듯 나오는 류승범의 속깊음은 정재영의 철없음보다 몇배 훌륭하고, 인간적인 친근함은 신하균의 고급스런 인공 미소보다 몇배 부드럽다. 그것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것이기에 그의 몇년 후를 가슴 설레이며 기다린다.

김일웅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배우다. 그렇다고 앞으로 많이 알려지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든 것은 자기 하기 나름인 것. 그는 '묻지마 패밀리' 가운데 '교회누나'란 작품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우린 김일웅을 만날 때 눈물을 흘릴 것이다. 연기가 좋아서? 천만에, 드디어 주연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배우들이 '수다'의 식구라면 박선영은 '수다'의 친척쯤 된다. 대학 1학년인 그를 만나서 "키도 작고 얼굴도 심심하고 연기가 좋은 것도 아니고, 뭐 좋은 배우가 되겠어"라고 생각했다가 내 생애 가장 치명적 오판을 하게 만든 여자다. 박선영, 본인이 이 사실을 모르기에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 했을 것이다. 그녀와의 유대를 생각하면 이렇게 만난 건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앞으로 더욱 수려해질 것을 생각하면 이번 만남이 시작이라 해도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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