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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문화 키워드] 객관보도 대신 일방 보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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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9월 내한한 일본 공영방송 NHK의 에비사와 가쓰지(海老澤勝二.70)회장. 회견 도중 '공정성' 부분에 이르자 자신감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서로 다른 주장.논점이 대립할 땐 다각적으로 보도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놨습니다. 특히 정치적 문제엔 철저히 중립을 지킵니다. 덕분에 수신료를 올릴 때도 여야 간 이견이 없지요."

그보다 한달 뒤 한국을 찾은 그레그 다이크 전 영국 BBC 사장도 철학은 동일했다.

"다양한 의견을 보도하는 게 공영방송의 역할입니다. 최대한 중립을 지켜야 하고 정부 등 한쪽 입장을 대변해선 안됩니다."

이렇게 대표적 공영방송들은 나름대로 공정성에 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신념은 국민 신뢰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의 방송, 더 좁혀 공영방송들이 처한 상황은 다르다. 2004년 내내 이념적.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에 시달렸고, 논란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한때 "공영방송이 공론 대신 당론(黨論)을 말하고 있다"(강동순 KBS 감사)는 내부 비판이 공개석상에서 나왔을 정도다.

지난 3월의 '탄핵방송'은 그 중 하이라이트였다. "방송사들이 지나치게 대통령 탄핵의 부당성만을 부각했다"는 게 요지였다. 논란이 일자 방송위원회는 한국언론학회에 분석을 의뢰했고, 연구진들은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성을 잃었다"고 결론내렸다. 인터뷰.패널 등에서 심각한 불균형을 보인 것은 물론 '억울한 약자'와 '부당한 강자'에 보도의 틀이 맞춰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민심을 반영한 것"이라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갈팡질팡하던 방송위는 결과적으로 심의를 포기해 버렸다. 그만큼 사안이 민감했던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은 편파 편집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탄핵찬성 집회에서 나온 대통령 영부인 비하 발언을 앞뒤 문맥 무시하고 보도해서다. 방송위가 주의조치를 내렸지만 해당 방송사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7월엔 MBC 'PD 수첩'이 도마에 올랐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 선고를 일주일 앞둔 송두율씨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것이다. 법원까지 우려를 표한 가운데 일부 시청자들은 '변호 방송'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14일 방영한 '권오석 다큐와 과거사 규명'이 사실상 대통령 변호에 치우쳤다는 이유로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기도 하다. 권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이다.

이렇게 '공정과 편향'은 올 방송계의 화두이자 숙제였다. 최근엔 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면서 공정성에 관한 논의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KBS 이사회는 수신료 인상안을 의결하기 전 공정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자체 조사결과 직원들 중 '공정성과 독립성 강화'를 인상의 전제조건으로 꼽은 사람이 절반(팀장 56.4%, 평직원 51.4%)에 달했다.

다매체.다채널 시대에 공영방송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다양한 의견을 객관적으로 전달해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영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최근 TV 저널리즘은 객관보도 관행에서 벗어나 주의와 주장을 강력히 표출하는 '주창 저널리즘'을 강화하고 있다"며 "시대정신들이 대립 경쟁하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은 역사의 심판관을 자처할 게 아니라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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