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아들들의 사회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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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통령의 아들들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정권시절 대통령의 아들이 거대한 정경유착과 비리의 한가운데로 몰려 철창신세를 진 지 불과 5년밖에 안지나서 역사의 어리석은 전철을 또다시 밟고 있다. 건국 이래 한국 정치에서 정치적 유력자의 아들들을 비롯한 친인척들은 정권 말기 비극의 희생양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정권말기의 비극 되풀이

아들과 자식 문제에 관한 한 한국에는 여당도 야당도 없다. 전임자와 집권자는 물론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는 도전자들도 여전히 아들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쯤 되면 정치인의 운명은 본인이 아니라 그들의 아들들에 의해 결정되는지도 모른다.

사실 아들을 포함한 친인척의 문제는 대통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사회 지도층 전반에 만연한 문제이기도 하다. 불과 얼마 전에는 현대그룹의 경영승계를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일은 드러난 한 예에 불과할 뿐이다. 재벌 승계를 둘러싸고 창업자의 아들들과 그 주변사람들이 갈등을 일으켰고, 이 와중에서 현대그룹은 공중분해 직전의 위기로 치달았다. 아들 한두명 때문에 국가와 기업의 운명이 송두리째 좌우되고, 국가 신용등급이 수시로 부침한다면 우리는 정말 아들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김일성-김정일 세습체제를 가장 역겨워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아들문제에 관한 한 우리도 북한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다. 이런 점에서 아들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에 국한된 것은 아닌 듯 하다. 오히려 개인의 도덕성을 넘어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구조적 문제와 관련돼 있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세계사에 길이 남을 몇가지 기적을 이룩하였다.세계 역사상 유례 없이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과 독재와 권위주의를 넘어 민주주의를 이 땅에 착실히 뿌리내린 것이나 최근의 경제 위기를 극복한 것 모두 세계가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기적을 이룩하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기업들을 일궈낸 우리들이 정작 아들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보다 앞서 온갖 역경을 뚫고 선진국이 된 나라들도 아들과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긴 시간을 보낸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마침내 가족이 그 폐쇄성을 극복하고, 보다 보편적인 근대사회 제도와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관행과 의식,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가족이 정치와 경제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 정치와 경제에서 명문을 이루는 가문들은 선진국에도 수두룩하게 많다. 그러나 미국에서 전임 대통령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거나, 거대기업의 후손들이 기업의 경영에 그들의 지분만큼 참여하는 것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선진국의 민주정치에서 가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개별가족의 이익과 정치제도, 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제도적으로 분리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적 정치제도와 시스템이 공정하게 작동하고, 정치과정의 투명성을 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누가 집권해도 그들의 가족과 이들을 둘러싼 세력들이 정치와 경제를 그들의 사익을 위해 활용할 수 없었다.

정치 투명·공정성 높여야

우리가 아직 아들의 발목에 잡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정치제도와 시장이 합리적으로 변해가고 있음에도 그에 걸맞은 제도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형상 민주주의가 정착돼 있음에도 아직 가신정치가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기업이 세계화된 시장경제 속에 편입돼 있으면서도 그 구체적인 내용이 천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제도의 현대화와 문화적 후진성 사이의 '문화적 지체'가 이런 사태를 반복해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이같은 아들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같은 '문화적 지체'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은 후진성을 걷어내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상식적인 일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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