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폭우 뚫고 생존자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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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5일 추락한 중국 여객기 탑승자 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밤을 지새우는 동안 사고대책본부도 폭우 속에서 촌각을 다투며 철야 구조활동을 펼쳤다. 주민·직장인·고교생들도 일손을 놓고 현장으로 달려가 밤새워 라면과 커피를 끓여주는 등 구조대원들의 힘을 북돋웠다.

◇헌신적인 구조활동=16일 오전 3시. 중국여객기 사고현장인 경남 김해시 지내동 돗대산 정상 부근(해발 3백여m). 칠흑 같은 어둠과 장대비를 뚫고 119 구조대원과 경찰·군인 등 5백여명이 구조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 있다. 장비 가져와."

손전등을 비추다 동체 조각 사이에 끼여있는 중상자나 시신을 발견하면 절단기와 동력 톱으로 동체 조각을 절단한 뒤 들것에 실어날랐다. 구조대원들은 비가 내려 미끄러운 비탈길을 내려오다 시신과 함께 자빠지기도 했다.

폭우로 수색이 간혹 중단되기도 하지만 조금만 비가 잦아들면 곧바로 작업을 재개했다. 구조대원 대부분은 온몸이 흙투성이로 변했지만 출동 24시간이 지나도록 긴장한 표정이 전혀 늦춰지지 않았다.

현장을 지휘 중인 정병호(鄭柄虎)경남도소방본부장은 "악천후였지만 가족의 생사를 몰라 발을 구르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 철야 수색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16일 오전 7시쯤 날이 밝으면서 2천5백여명의 구조대원이 추가로 투입돼 정밀 수색활동을 했다. 땅속에 박힌 시체와 유류품을 찾아내기 위해 곡괭이·호미는 물론 맨손까지 써가며 샅샅이 훑어나갔다. 항공사고 사상 유례가 드물 정도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데는 주민의 헌신적인 구조활동이 큰 몫을 했다.

현장에서 1㎞쯤 떨어진 섬유업체 도영싸이징㈜에 근무 중이던 최형관·박도영씨는 낮 12시쯤 마을 방송으로 사고소식을 접하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가 화염과 진흙탕을 뒤지며 환자들을 구출, 병원으로 업어 날랐다.

주민 황부철·김성욱씨는 자신의 옷을 벗어 부상자의 상처를 닦고 싸매주며 현장상황을 파악, 출동한 119 구조대원들에게 생존자 위치를 안내했다.

김해고 학생 10여명, 삼성그룹 전문구조팀 3119구조단원 20여명, 특전동지회·김해시진영연합전우회 등도 현장과 병원에서 구호활동에 동참했다.

한편 이날 오전 11시20분쯤 중국측 조사단이 현장에 도착해 1차 조사활동을 벌였다. 모두 25명으로 구성된 중국조사단은 현장 지형과 공항의 위치, 나무들이 쓰러진 방향 등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훈훈한 자원봉사=새마을부녀회 등 김해시내 민간단체들은 15일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전체 회원 3천여명을 2백~3백명 단위로 나누어, 하루씩 돌아가며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김해시생활개선회 등 여성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첫 봉사조 2백여명은 15일 오후부터 사고현장 근처에 텐트 4개를 쳐놓고 대형 버너로 3백여 상자분의 라면과 추어탕을 끓여 구조대원들에게 대접했다. 구조현장과 3백여m쯤 떨어진 텐트에 오기 힘든 대원들에게는 주먹밥·음료수·빵 등을 날랐다. 이들은 구조대원들에게 나눠줄 빵이 모자라자 밤늦도록 김해시내 빵집을 돌아다니는 정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해시 생활개선회 염점수(57·여)회장은 "고생하는 구조대원들에 비해 우리 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고 했다. 鄭경남도소방본부장은 "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처럼 효율적인 구조활동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김해=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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