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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다리 휘는' 애니 부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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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이번 전주영화제의 하이라이트는 사실상 애니메이션 영화제다. 작품 리스트를 펼치면 국내에서 좀체 접하기 힘든 귀한 작품들이 꾹꾹 눌러담겨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우선 두 명의 노장, 라울 세르베(벨기에)와 표도르 히투르크(러시아)감독의 작품들을 놓쳐서는 안된다. 자유분방한 상상으로 1920~30년대에 이미 다채로운 영상 실험을 벌인 거장들도 만나야 한다. 여기에 인형 애니메이션의 본고장인 체코의 작품까지 섭렵하고 나면, 애니메이션의 거대한 세계 속으로 한발짝 들어선 자신을 느끼게 될 것이다.

◇라울 세르베 회고전=만화영화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이 생소할 것이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자유로이 오가며 인간의 자유와 평화·정의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 그의 스타일을 두고 세르베 그래피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66년 베니스 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크로모포비아'부터 칸 영화제 단편부문 대상을 받은 '하르피아'(79)를 거쳐 지난해 벨기에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최신작 '아트락션'까지 대표작 10편이 준비돼 있다.

◇표도르 히투르크 특별전=날카로운 사회 풍자와 재치있는 유머를 단순한 선으로 경쾌하게 표현하는 데 그를 따라갈 사람은 별로 없다. 유리 놀슈타인과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애니메이터로 꼽힌다. '바실리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프레임 속의 남자''섬'등 5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그의 체취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스위스 태생의 애니메이션 프로그래머 오토 앨더가 제작한 59분짜리 인물 다큐멘터리 '천재의 정신'을 놓치지 말자.

◇체코 애니메이션 특별전=인형이나 오브제(물체) 애니메이션에서 독보적 경지를 이루고 있는 체코의 작품 28편이 상영된다. 전통 인형극을 인형 애니메이션으로 발전시킨 이리 트른카의 '황제의 나이팅게일' '한 여름밤의 꿈''손'등은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실험 애니메이션 어제와 오늘=20년대 독일의 오스카 피싱어·영국의 렌 라이 등이 벌였던 색채와 기하, 움직임의 실험들은 다다이즘·초현실주의와 연결되며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었다. 그 후 추상 애니메이션의 바통을 이은 베벨 노이바우어의 신작 등 색다르면서, 조금은 어려운 애니메이션에도 도전해볼 필요는 있다.

이밖에 지미 무라카미의 '바람이 불 때' 등 전쟁의 의미를 다룬 작품 모음이나 일본 독립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구리 요지와 오카모토 다다나리의 작품들, 그리고 한국 독립작가들의 실험성 강한 작품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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