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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피아니스트의 '괴짜 변주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캐나다 출신의 신출내기 피아니스트 하나가 1955년 뉴욕 CBS 방송 스튜디오에 막 들어왔다. 20대 초반인 그의 기상천외한 차림에 사람들이 뒤로 나가자빠졌다.

콜롬비아 음반 데뷔 레코딩을 위한 그날은 6월, 따라서 날씨는 따뜻했는데 그 젊은이는 외투에 목도리와 장갑으로 중무장을 했다. 더 가관인 것은 그가 들고온 '장비'다. 커다란 생수병 두통과 한무더기의 타월, 각기 다른 색깔의 알약들이 빼곡한 약통 5개,그리고 네발의 크기가 제각각인 전용 피아노 의자였다.

녹음 시작 직전 그 괴짜가 다시 이상한 '의식'을 시작했다. 피아노에 앉기 전 20여분간 더운 물에 팔꿈치까지 담근 채 꼼짝도 안했다. 약간의 온도변화에 하도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하니 주변 사람들이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다. 그 젊은이는 20세기 피아노 음악 연주의 한 진풍경을 이뤘던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3~82)였다.

상대가 악수할때 너무 세게 자기 손을 쥐었다고 고소까지 했다는 일화를 남겼던 그는 혈압을 수시로 체크하고, 스스로 처방한 약을 다량 복용했다. "고양된 상태를 유지하기위해, 아니면 안정된 심리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가 콘서트 홀 연주를 광대놀음이라고 비판하며 레코딩에 매달린 것은 매니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라이브 음악을 높게 치는 음악계 상식을 굴드는 왜 그렇게 기피한 채 '통조림 음악'인 레코딩에 매달렸을까?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저자는 굴드에게 음악은 초인적이고 영웅적인 기교의 과시도 아니고,자기 훈련의 과시 역시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렇게 요약된다. "예술의 목표는 아드레날린의 순간적인 분출로 인한 (감정의) 촉발이 아니라 전생애에 걸쳐 경이와 평정의 상태를 구축해나가는 과정"(54쪽)이다. 따라서 콘서트 홀 연주란 피아니스트에게 외면에 치중하는 광대짓을 요구하게 마련이고, 또 수천명의 관객들에게 연주가 요구하는 명상과 평정, 혹은 '신비한 동의'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 굴드의 지론이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피아노 연주 전, 특히 그가 끔찍하게 높이 평가하는 바흐 연주를 앞두고 "누에고치 안에 자신을 감싸는 행위"는 당연했다. 저자의 표현으로 "그가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은 신비주의자들의 신앙과 같은 차원"이라고 강조한다.

근대 음악 특유의 기교의 과시 대신 익명의 예술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굴드야말로 얼마나 개성에 넘치는 연주를 했던가! 그라는 인간은 "까다로운 명징성, 불과 얼음의 모순"(28쪽)이라서 스튜디오 속에서의 인공음악에 못말리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88년 프랑스에서 출간돼 유명한 페미나 바카레스코상까지 수상했으니 전기문학으로 썩 괜찮은 이 책은 서술이 좀 별나다.

굴드의 내면에 막바로 치고들어가 그의 내면을 차근히 들여다 보는 방식이다. 이 희유(稀有)한 천재에 대한 애정도 뚝뚝 묻어난다. 굴드의 대표적 녹음인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본 따 장절(章節)구분까지 한 이 책은 음악에 대한 소양을 가진 이들에게 더 즐겁게 읽힐 만하다. 번역도 문제가 없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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