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와 토마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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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의 권위지 뉴욕 타임스(NYT)가 1970년대 경영 위기에 몰렸을 때 선택할 길은 두가지였다. 경쟁지들보다 월등히 많은 기자 수를 대폭 줄여 경비를 절감하거나, 아니면 지면을 더욱 충실히 꾸며 보다 많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방법이었다.

당시 편집국장 에이브 로젠탈은 후자를 선택하기로 결심을 굳혔고, 사주(社主)인 아서 설즈버거 회장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어 로젠탈은 사내에서 나중에 '수프 연설(soup speech)'이라고 이름붙은 유명한 연설을 했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수프에 물을 더 많이 넣어 기사의 품질을 떨어뜨리든가, 토마토를 더 많이 넣음으로써 지면을 개선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나는 토마토를 더 넣기로 했다"는 요지였다.

이후 1976~78년 뉴욕 타임스는 오히려 투자를 확대, 공격적인 지면개선에 나서 기존 2섹션 체제를 4섹션으로 늘렸다. '토마토 전략'으로 불린 로젠탈의 방침은 단순한 지면 늘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만약 섹션 지면에 요리기사가 실릴 경우 그 기사는 (세계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우리 신문 국제기사와 동일한 수준을 갖춰야만 한다"고 기자들을 독려했다. 토마토 전략은 성공을 거뒀다.

1851년 창간 이후 제호의 로고 한번 바꾸지 않아 '회색의 귀부인(Gray Lady)'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뉴욕 타임스는 79년 또 한번 획기적인 변화를 꾀한다. 이해 10월 16일 뉴욕 타임스 본판 1면에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청문회에 출석한 재닛 리노 미 법무장관의 사진이 사상 처음 컬러로 실린 것이다. 이날은 총 1백38쪽을 발행해 평일판으로는 최다 페이지를 기록한 데다 34년간 뉴욕 타임스를 이끌어온 설즈버거 회장이 아들 설즈버거 2세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앉은 날이기도 했다.

그런 뉴욕 타임스가 올해 퓰리처상 저널리즘 분야 중 7개 부문을 휩쓸었다. 한국인 사진기자가 한몫했다고 한다(본지 4월 10일자 11, 21면). '토마토 효과'도 작용했을 것이다. 요즘 일부 정치인과 언론사·기자들이 어우러져 시비를 가리느라 바쁘다. 더러는 한 걸음씩 물러나 자기가 하는 일의 품질도 곰곰 따져보았으면 한다.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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