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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과 두뇌를 동시에 웃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다이아몬드를 쏴라'(원제 Who is Cletis Tout?)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상당한 영화 지식이 필요하다.'티파니에서 아침을''선셋 대로''마지막 총잡이' 등 할리우드 명작들이 자주 인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리 겁을 먹을 필요까진 없다. 이같은 인용이 잔재미를 증폭시키는 장치임엔 분명하지만 이를 모르더라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코미디인 것이다.

보석 찾으러 감방 자진입소

그럼에도 웃음의 얼개는 정교하다. 액션·로맨스·추리·어드벤처 등 다양한 요소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현재와 과거 등 서술 시점을 요령 있게 섞어놓으며 퍼즐 맞추기 비슷한 지적 긴장을 유발한다. 가볍게만 흐를 수 있는 소극을 긴박하게 끌고가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영화에 빠지면 일도 잊어버리는" 지독한 영화광인 전문 킬러 짐(팀 앨런)이 주도한다. 마피아 집단의 의뢰를 받고 붙잡은 탈옥수 핀치(크리스천 슬레이트)에게 재미난 얘기를 풀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 영화 속 영화, 즉 '액자 영화' 구조를 동원하고 있다.

'다이아몬드를 쏴라'의 묘미는 짐과 핀치가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들의 대화가 현재를 구성하고, 핀치의 얘기 보따리가 과거를 채운다. 핀치가 빚어내는 상황 상황에 푹 빠져든 짐이 그가 편력했던 숱한 영화 속 대사를 연신 토해내는 모습이 익살스럽다. 프랑스 영화 '레옹'에서 냉정한 살인기계 레옹이 발랄한 소녀 마틸다 앞에서 무장해제되듯 감성파 킬러 짐은 핀치의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한다.

액션·로맨스·추리 잘 버무려

짐작할 수 있듯 영화의 본체는 핀치의 얘기다. 그와 함께 탈옥했던 마법사 트레비스(리처드 드레이퍼스)가 25년 전에 훔쳐 숨겨둔 다이아몬드를 되찾는 과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마피아를 협박해 쫓기고 있는 클레티스 타우트로 오인받는 핀치, 마피아의 의뢰로 타우트를 추적하는 짐, 부패한 경찰과 마피아의 밀월,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다시 감방에 자진 입소하는 핀치, 그리고 핀치와 마법사 딸 테스의 운명 같은 사랑 등등.

이 영화로 데뷔한 크리스 베르 윌 감독은 이처럼 다양한 곁가지를 사방으로 쳐나가면서도 종국에는 이들을 매끈하게 묶어놓는 탄탄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마지막 순간에서도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진 켈리를 패러디하는 여유를 드러낸다.

끝까지 유쾌한 장난을 쳐보겠다는 뜻일까. 천박한 농담, 거친 욕설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관객을 자유자재로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의 재주는 지난해 이후 한국 영화계를 장악하고 있는 숱한 코미디들이 참고해야 할 덕목임이 분명해 보인다. 15세 이상 관람가. 12일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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